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스무 살!
말만 들어도 설레고 낭만과 꿈이 가득할 것 만 같았던 나의 스무 살은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고,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나는 취직을 해야 했다.
취준생이라는 말조차 사치였으며, 대학교 졸업 전 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
친구들은 성인이 된 후 맞이하는 첫 방학에 들떠있었고,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 당시 유럽여행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나는 바로 계절학기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F학점, 재수강, 복수전공, 전과, 편입학 등의 이유로 졸업 학점을 제때 채우지 못한 경우에 듣는
계절학기 수업이지만 나는 취업 후 학점이 부족해 졸업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들었다.
(결과적으로 4학년 1학기에 학점을 모두 채울 수 있었다.)
한 달간의 계절수업이 끝난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는 학기 중에도 계속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다문화가정 멘토링을 신청해 학생들을 가르쳐주며 용돈을 벌었고,
명절엔 단기판촉행사를 뛰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고 2학기에 나는 휴학을 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딱히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아무 조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시험이 공무원 시험이었다.
그리고 항상 힘들게 일을 하시던 엄마에게 공무원이란,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데서 일하는,
어느정도 사회적지위도 있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공무원이 되길 누구보다 바라셨다.
내가 왜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아.. 나는 공무원을 해야 하는구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공시생이 되었다.
빠듯한 형편에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건 꿈도 못 꿨고, 애초에 수험기간을 최대 1년으로 잡았다.
집 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순수 70시간 공부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요일은 휴식. 스스로 장기전에 약한 걸 알기에 세운 전략이었다.
잠은 무조건 8시간을 잤다.
8시간씩 잠을 자며 하루에 12시간 공부를 하려면 깨어있는 시간 꼬박 공부만 해야 했지만 오히려 푹 잔 덕분에 졸리지도 않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쉬는 날에도 따로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거나 보충 공부를 하곤 했다.
명절, 크리스마스, 생일과 같은 기념일도 나에게는 그저 똑같이 공부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괜히 분위기에 휩쓸려 하루 쉬어버리면 다음날 다시 공부하는데 지장이 갈까 봐 철저하게 지켰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공부하는 동안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오늘 공부한 것들이 다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다섯 과목 모두 시험범위가 방대해서 기본서만 하더라도 몇만 원씩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에는 따로 공무원 학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강의를 수강했는데, 이 마저도 부담이 돼서 전혀 베이스가 없던 행정학, 행정법만 강의를 듣고 나머지는 EBS를 활용했다.
하루에 두 과목씩, 오전에는 기본서를 회독하고 오후에는 문제를 풀었고,
틀린 부분은 기본서로 돌아가 다시 공부했다.
그렇게 9개월간 계속했다.
중간중간 내가 잘하고 있는지, 합격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조건 붙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출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굉장히 많이 했다.
23살이 되던 해에 시험을 쳤고,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면접스터디에 들어갔고, 일주일에 1~2번씩 만나 모의 면접을 진행했다.
서로 예상질문도 물어봐주고, 동영상을 찍어서 피드백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드디어 면접날,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처음 입어보는 정장과 불편한 구두에 발이 아프다고 느낄 정신도 없었지만
남동생이 같이 동행하며 짐도 들어주고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준 게 기억이 난다.
아쉬운 듯 끝난 면접과 함, 나는 합격발표일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복학을 했고,
학교에서 강의를 듣던 중 최종합격 문자를 받게 되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한참을 우셨다.
이제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려울 것 없이 탄탄대로일 것 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