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신뢰에 대해서
"서후(가명)야 이거 해볼래?"
서후는 곧잘 망설임 없이 쓴다. 글을 잘 쓰는 서후에게 칭찬을 많이한다.
그런데 서후는 쑥쓰러움이 많은지 글을 다 쓰면 항상 선생님에게 묻는다.
"선생님,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저는 이런 거 잘 못해요.."
정말 이상한 일이다. 공부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일수록 이상하게 모범적이다. 선생님이 되어서 교실에서 지켜보면 그렇다. 자기 확신이 넘치는 아이들이 실력이 뛰어난 경우는 이상하게도 흔치 않다. 결과물만 보았을 때 내가 정말 잘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기에는 아이들의 경험이 너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록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잘하려고 한번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꼭 해야만 할까? 오히려 나는 걱정 없이, 내가 정말로 잘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진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놓인다. 맞춤법, 띄어쓰기, 조사, 문법, 문맥이 잘 맞지는 않더라도 아이는 그 자체로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잘될거야!" 이 말을 들으면 괜시리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음.. 에이 설마하겠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의 인생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까 항상 나는 완벽하지 않을 수 밖에 없지만 내 생각까지 꼭 그렇게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을 정말 잘하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자기 신뢰는 결국 가장 자신을 아끼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칭찬해주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런데도 정말 어렵다. 말로는 쉬운데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나를 너무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기가 어렵다. 기준이 높아서 혹은 내 주변 상황이 정말로 힘들어서 혹은 나를 제외한 다수가 너무 잘하고 있을 때. 이렇게 물리적인 증거물들이 눈 앞에 있을 때면 자기확신은 바람 앞에 켜둔 성냥개비처럼 흔들리고 만다.
아이는 뭘 무서워하는 걸까? 다른 친구들이 더 많이 책을 읽을 때일까? 다른 반 친구가 1등을 했는데 본인은 아무것도 상을 타지 못할 때일까? 정희용 작가의 자체 발광 오샛별의 책은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주인공은 관심을 받기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어느날 부터 다른 아이게게 반 친구들의 관심을 모두 빼앗겨 버린다. 샛별이에게 '단 하나 뿐인 나'로 제각각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초중학년이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우울했던 내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 존재 자체로 가치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 그동안 얼마나 나를 평가하고 비교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을까?
"너도 반딧불이처럼 네 안에서 빛을 발견하면 좋겠어.
넌 보석처럼 빛나는 이루비이니까!"
- <자체발광 오샛별 중>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도 어렸을 때는 완벽을 바랬다. 어른이 된 나는 완벽까지 바라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실수가 생기면 쉽게 자책하는 편이라 내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생각을 자주 깜밖하곤 한다. 어른도 힘든데 어린아이들도 해내기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잘 못믿고 의심하는 아이들을 보면 지난 날의 혹은 아직도 성장해야할 '나'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한다.
나는 우선 서후(가명)에게는 확실한 무언가를 알려주는 편이다. 자기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 세상에는 확실한 것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우선 납득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 우주와 지구.
무지개를 보았을 때 느낀 놀라움. 친구와 대화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
서후는 이러한 사실들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확신들로 내 생각을 채워나가다 보면 분명히 나중에는 내가 생각보다도 괜찮다고는 생각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라? 생각보다 좋네? 그래. 나 좀 괜찮은 사람이야.
그때 비로소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일부분 중에서도 괜찮은 부분들을 명확하게 쳐다보면서 천천히 그렇게 아주 조금씩 자기 확신을 쌓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기 확신이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쌓아가는 모래알 같다.
PS. 모래알은 바람에 흩날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괜찮다. 새롭게 내가 모을 수 있는 모래알은 엄청나게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