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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 Dec 01. 2023

선생님, 쉬는 시간은 언제예요?

쉬는 시간은 어른이나 아이에게나 소중하다


아이가 손을 든다.

“응 왜? 서우(가명)야”

서우가 약간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선생님, 쉬는 시간이 언제예요?”

나는 순간 뜨끔한다. 그다음 짧은 자아성찰을 한다.


  쉬는 시간을 물을 때 나는 수업의 절반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나만 너무 신나게 떠들어댔구나 싶다. 어떨 때는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아이들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물어보나 싶기도 하다. 그런 경우 수업에 대한 참여도가 전반적으로 낮다. 가끔 책의 주제가 너무 높은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어서 짧은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이 해당 내용을 소화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어휘를 풀어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카드 활동, 짝 맞추기 활동, 미션 활동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간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일상에서의 경험이 없는 아이가 직관적으로 뜻을 깨닫기 어려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 시련과 역경, 고립과 성취… 특정 상황에 직면해야 비로소 그 단어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어휘가 있다. 이런 어휘를 나를 ‘경험된 언어’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아도 그 단어의 진짜 무게감을 느끼고 그 단어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와 관련된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서 경험이 아직 부족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경험된 언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책과 그 이야기 속의 상황을 읽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시간과 장소와 자원이 제한되어 있어 소설책과 시는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직접 내가 몸소 겪는 경험’이란 기회는 사치재에 가깝다. (ex 여행) 그 대신 책의 이야기를 읽고 다양한 주인공의 상황을 보고 나의 관점에서 벗어나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인물로 사고해 보는 활동이 필요하다. 바로 독서이다. 거기에 덧붙여 대화와 토론과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경험이 부족한 아이에게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부모님께 ‘경험된 언어’가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드리고자 한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나는 늘 ‘마당을 나온 암탉’ 이야기를 함께 꺼낸다. 양조장에 갇힌 닭 잎싹은 제한된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밤낮 구분 없이 철장에 갇혀 모이를 쪼고 알만 낳기를 반복하던 삶의 시간이 훨씬 길지만 그 안에서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암탉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알, 잠, 배부름이란 세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


짧지만 오초 가량 허공에서 날갯짓을 할 수 있다는 비행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폐닭이 되었기에 귀여운 병아리를 낳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잎싹은 알을 품고 자신의 아기를 죽을힘을 다해 지키고 마침내 다 큰 청둥오리의 아기를 독립시키는 일까지 해냈다. 잎싹의 경우 양계장이라는 폐쇄된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용기 내어 마주할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현실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시작해야만 남과 다른 나만의 모험을 하면서 고생 끝에 값진 경험을 얻어낼 수 있다.


앞으로 아이가 겪어야 할 다양한 경험

- 인생을 버티게 해 줄 가치관 만들기

- 흑백논리에 벗어나는 사고의 유연성 기르기

- 자기 자신의 성향과 특성을 온전히 알고 받아들이기

-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감당하기

- 언제나 나만이 삶의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해서 노력이 언제나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기

- 뜨거운 가슴으로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제 막 입을 떼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어른에 비해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한 경험의 순간이 매 순간마다 일어나기 때문에 어른의 눈에서는 사소하고 별 일이 아닐지 모를 상황에서도 큰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는 어른의 눈에는 별 것 아닐지라도 큰 모험이자 시련이 되는 것들이 많다.


수업 중 큰 소리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던 수연(가명)이가 떠오른다. 첫 수업 날에는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서 울었다. 나는 그런 수연이가 마음에 걸려서 수업에 좀 더 많이 웃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런 감정적인 반응은 꽤나 소모적이라서 집에 돌아와서는 조용히 쉬게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수연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연이가 경험한 대부분의 하루는 선생님인 나 보다 훨씬 길고 고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경험은 다 크고 거친 모래사장 같다.


그래서 나는 수업만큼 쉬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쉬는 시간 동안 주어지는 자유로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 그 아이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복도를 나가서 책을 읽는 아이,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오는 아이, 선생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아이... 그때 아이들은 나를 중심으로 된 세계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5분 이상 주어지는 쉬는 시간은 없다. 자유로운 상황에서의 경험을 쌓고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수연이도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빨간 눈과 분홍빛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다. 각자 아이가 느끼는 수업의 분위기와 맛은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개성 있고 다양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보는 책 읽기 시간이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몰입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은 책 속의 인물을 자신의 경험에 다시 그려보곤 한다. 나아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아이가 어휘를 습득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선생님은 아이와 상호 작용한다.


만약에 너라면 어떤 말을 했을 거야? 그래 그렇게 생각했던 너의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 같아? 과연 주인공은 좋은 선택을 내린 걸까? 만약 주인공이 반대로 행동했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데?


책을 읽으면서 많이 웃고 울고 고민하는 그 순간들이 내 안에 쌓여갈 수 있도록 선생님은 묻고 또 묻는다.

수연이는 여린 마음이 있어서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는 친구의 마음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용기를 가지고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는 자유를 만끽할 수는 있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 나는 수연이와 서우를 부른다. 서연이에게 서우가 사과한다. 미안. 짧고 굵지만 금세 그 말에 서연이는 울음을 그친다. 서우의 큰 웃음소리를 낸다. 그러자 이번엔 서연이가 조금 웃는다. 매시간마다 아이들은 배우고 있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과 책이라는 매개물 밖에서도 대화를 서로 나누면서 좀 더 성장하는 것이다.


양계장을 나온 암탉 잎싹처럼 새로운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는 세 번의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책 속에서 일어나고 두 번째는 독서에 관한 팀 토론과 개별 질문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 학부모님은 믿기 어려우시겠만 마지막으로 수업이 잠깐 멈춘 쉬는 시간 중에서도 아이들의 경험이 넓어진다.







Fin. 당신은 무엇을 하면서 쉬는 어른인가요? 저는 잠만 잘 때도 있답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침대를 정돈하고 산책을 나가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훨씬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거든요 - 침대 정리 후 짧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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