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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앉은 바다

by 도로미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한창이던 어느 날,

쉬는 시간이 끝난 교실로

선생님이 조용히 아이 하나를 데려오셨다.


“오늘 우리 반에 전학 온 아이야.

이름은 루시라고 해.

루시는 말을 잘 못하니까, 우리 함께 잘 살펴주자.”


아이들의 표정은 순간 휘둥그레졌고,

교실 안엔 작은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루시는

내 옆, 빈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작고 여린 루시는

단정한 단발머리에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하나에

나는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왜 말을 못 해?”


내 철없는 질문에

루시는 익숙한 듯

항상 들고 다니는 작은 메모장을 꺼냈다.

그리고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를 보여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 해.

대신 귀는 잘 들려.

나는 수연이 말을 잘 들어줄 수 있어.”


그 글을 읽는 순간,

어린 내 마음속에 북소리처럼 울림이 퍼졌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했다.

살면서 루시처럼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하지만 루시는,

말을 못 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친구들 앞에서도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답답함에 물었다.


“왜 다 참아? 너 바보야?”


그때도 루시는 방긋 웃으며

수첩의 마지막 장에 적힌 글귀를 내게 보여주었다.


“수연아, 나는 그 친구들 안 미워해.

그 애들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이해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조그마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 품은 마음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 같다고 느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루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금은 가끔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나눈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 만나

예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났다.


다름을 이해받기 어려웠던 그 시절,

루시는 따뜻한 눈빛과

묵묵히 안아주는 마음으로

철없는 말과 행동을

기꺼이 품어준,

바다 같은 친구였다.


루시야,

시간 나면 꼭 캘리포니아로 갈게.

그땐 꼭, 그 시절처럼

나랑 소풍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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