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떨어지고 커피 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난 일어나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 의식이었다. 창문을 열자 찬 기운이 스친다.
지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떠오르지만,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하루가 시작되고 저물며, 그 시간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내 어린 아들들은 어느새 장성해 제 길을 걷고 있고
나는 정읍으로 내려와 노후를 준비하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은 정말 몰랐다.
어릴 적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수많은 책임들이 나를 끌어당겼고,
그 버거웠던 시간마저 지나고 나니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찾아왔다.
해가 기울어지는 저녁이면 나는 작은 촛불을 켠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불빛은 나에게 묻는 듯하다.
“너에게 남은 인생은 어떻게 보낼 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윽고 말했다.
“난 계획 같은 거 없어! 평생 계획과 실행 속에 묻혀 살았는데,
이젠 자유롭게 나를 내버려둬도 되지 않아?”
공허하게 울리는 내 대답에 가슴이 문득 뭉클해졌다.
왜 나는 늘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며 살아야 했을까?
인생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데
왜 나는 바보처럼 변화에 둔감했을까.
저 조그만 촛불도 조금씩 밝아지며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태우고 소멸한다.
그 밝아짐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었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정말 행복했던 걸까?
무언가를 세우고 달성하는 성취감은 물론 소중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보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를 더 생각하고 싶다.
이제는 그만, 목표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자유를 꿈꾸고, 계획에서 한 발 물러나고,
잠시 멍하니 있으면서 그렇게 나를 놓아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내 인생의 숙제가 무엇인지.
그 답을… 조금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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