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에 보자, 단풍나무야!

by 도로미

창문으로 깊게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떠졌다. 토요일 아침, 괜히 설레는 하루다.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도 자꾸 베란다 창문을 흘끔거렸다.


이 찬란함이 사라질까 봐 마음이 먼저 서둘렀다. 숙제를 대충 끝내고 뛰어나가는 초등학생처럼
청소기와 걸레를 내려놓고 뚱이를 데리고 산책길로 나섰다.


두껍게 입힌 뚱이는 연신 꼬리를 흔들며 잘 따라온다. 익숙한 길, 나는 보이는 것들로 힐링하고
뚱이는 냄새로 힐링한다. 그렇게 걷다 보니 바스러질 듯 말라버린 붉은 단풍잎이 눈에 들어왔다.

앙상한 가지를 살짝 만져보았다. 오그라든 다섯 손가락은 내 따뜻한 손길을 거부하듯 사르르 부서졌다.


지난주만 해도 그렇게 붉고 아름다웠는데. 아쉬움이 저절로 말끝에 묻어난다.

찬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조용히 담아두고 걸음을 옮겼다.


문득, 주마등처럼 살아온 세월이 스친다. 봄날의 새싹 같던 어린 시절, 벚꽃처럼 만개했던 청춘,
그리고 모진 바람 속에서도 천천히 여물어가던 내 마음들.


지금의 나는 노년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작은 단풍나무를 보며

그 위에 내 모습을 겹쳐본다. 저 단풍나무는 저문 게 아니다. 새롭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그렇다. 겪어온 시간과 쌓아온 지혜가 있으니 앞으로의 계절도 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에 갇히지 말자.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천천히 걸어간다면

또 다른 화려함은 분명 나를 찾아올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 않는다.


나는 단풍나무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내년 봄에 보자. 그때는 파릇한 잎사귀로 인사해 주렴.”

발걸음은 어느새 가벼워졌고 앞서가는 뚱이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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