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텍스 장갑 너머의 하루
냉장고가 텅 빈 어느 날,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갔다.
정읍사 옆, 농협 하나로마트.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싱그러운 딸기 한 상자.
“저건 나갈 때 사야지.”
마음속으로 찜해두고는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들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계산대에 다다르자
마지막으로 스티로폼 상자에 수북이 담긴 딸기를 들어 올렸다.
뚱이랑 나눠 먹을 생각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딸기 향마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머리를 단정히 묶은 50대쯤 되어 보이는 캐셔분이
양손엔 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채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밝고 또렷한 목소리였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그 인사를 허공에 흘려보냈다.
그녀의 정성스러운 목소리는
계산대 주변에만 조용히 머물 뿐이었다.
“00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미소 짓는 얼굴 뒤로,
숨 막히게 조여 있는 라텍스 장갑 속 손이 자꾸 눈에 밟혔다.
빠르게 움직이며 계산을 마치는 그녀를 보며
문득, 집에 가면 많이 피곤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기 향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건
그녀의 손이었다.
왜인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분의 고단함은,
그분만의 것이 아니란 걸.
하루를 마무리하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라텍스 장갑을 끼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땀이 차고 답답하지만,
끝까지 벗지 않고 버티며 견디는 하루.
지금 이 밤,
나는 그 장갑을 벗으며 조용히 되뇐다.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고.
그리고 말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손에게...
당신의 손은 참 고귀합니다.
그 손이,
당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
그저 물건을 계산하는 손에서 한 생의 무게를 봅니다.
제가 바라본 한 순간...
장갑 너머로 비친 손의 고단함,
그럼에도 따뜻했던 인사 한 마디에
마음이 젖어든 기억을 담았습니다.
파란 라텍스 장갑은 그녀의 수고를 숨기고 있었지만,
저는 그 장갑 사이로 땀과 피로, 그리고 미소의 진심을 보았어요.
그래서 저는 ‘일상의 손’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다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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