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상추, 그리고 나

쌈장 한입 속에 담긴 마음

by 도로미

근무 중 울린 전화벨.

엄마였다.

“퇴근하고 상추 뜯어놓은 거 있으니 가져가라.”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한 시간.

살짝 짜증이 밀려왔다.

그냥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었는데…

결국 마치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시골길엔 우사가 보이고,

담배농사 짙은 하우스들과

초록으로 물든 논들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그 풍경에도 귀찮은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엄마네 집 뒤편엔

500년이 넘었다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사 온 날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거렸다.

“여기 옛날엔 훈장이 살던 부잣집이었지~”

엄마는 그 느티나무 병풍 삼아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보내신다.


조수석엔 상추, 부추, 열무김치가 한가득.

짐을 옮기고 나니

그냥 드러눕고 싶었다.

“혼자 사는데… 다 먹지도 못하는데…

맨날 이렇게 많이 줘.”


투덜거리며 상추를 씻다

삐죽 고개를 내민 푸른 잎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정리해 줘야지~”

그 순간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무릎도 아픈 분이

상추 하나하나를 따며

딸내미 줄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나는, 그걸 가져와 씻는 게 귀찮다고 투덜댔다.

한참 전에 부모가 된 나인데

여전히 엄마의 정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씻다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젠 놀라지도 않고

조심스레 한편에 옮겨준다.

엄마의 마음도 그렇게

조심스레 담아 오늘 밥상을 차린다.


구수한 된장찌개,

갓 담근 열무김치,

엄마가 보내주신 상추 위에

쌈장을 얹고

흰쌀밥을 크게 싸서 입에 넣는다.

그 상큼하고 건강한 맛에

나는 오늘도 감동하며,

엄마의 사랑을 먹는다.


“엄마!

상추랑 열무김치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공기 다 먹었어요.

사랑해요, 엄마.”



✍ 작가의 말

엄마는 언제나 손으로 말을 건넸다.

상추 한 장, 열무김치 한 젓가락,

그런 작은 것들이 사실은

"밥은 먹었니?", "오늘은 괜찮니?",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의 문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철부지 딸내미다.

다 먹고 나서야 그 손길의 무게를 깨닫는다.

이 글은, 그런 엄마의 밥상 앞에서

조금 늦게 철이 든 딸이 드리는

작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지금, 당신 곁에도 그런 상추 한 줌의 사랑이 있다면—

부디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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