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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영 Mar 18. 2022

5. 눈빛


  나는 사람을 만나면 눈빛을 제일 먼저 살핀다.


  상대방의 눈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머리와 마음에 담긴 걸 표현하고 몸의 상태도 알려준다. 입으로 하는 말과 눈으로 하는 말이 다른 경우가 많아 눈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몇몇의 눈들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옆자리에 앉았던 늘 말이 없던 친구의 눈은 항상 슬퍼 보였다. 조용한 성격이라 내가 말을 걸면 살며시 웃으며 몇 마디 대답해주곤 했다. 공부도 잘하고 은은한 미소가 예뻐서 나는 그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쉬는 시간에도 늘 책을 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애에게 몇 번을 졸라서 같이 매점에 가곤 할 만큼 좋았다.


   봄 수학여행을 앞두고 반전체가 떠들고 들썩일 때 친구는 더 우울해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 대답이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은 항상 젖어 있었고 너무 슬퍼 보였다. 그리고 수학여행을 함께 가지 못한 그 친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여행 끝나고 며칠 후 알게 되었다. 처음 겪는 친구의 죽음 그것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 이후 그 슬픈 눈은 기억 속에 각인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특히 입은 웃으면서도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르고 내 마음이 아파진다.



  큰 동생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요양 차 시골 부모님 집에 머무는 몇 년은 제대로 얼굴도 못 보고 지냈다. 명절마다 부모님 집에 가도 동생은 뚝 떨어져 있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좀 나으면 집에 와서 지내기를 반복하는 생활을 들을 때마다 걱정은 했지만 그리 위중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구태여 찾아가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만큼  따뜻한 마음의 자락이 그때 나에게는  없었다.


  한참 만에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동생을 만났다. “누나 왔나” 하는데 처음엔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나 마르고 초췌한 모습에 동생인 줄 몰랐다. 가장 놀라운 것은 눈빛이었다. 눈의 흰자위는 탁하고 갈색이었다. 무엇보다 검어야 할 눈동자는 옅은 회갈색이 되었고 총총하던 눈빛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오랜 병의 고통에 손발을 다 들고 완패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몸에서 뿜어 나오는 당당한 기운은 어디 갔는지 없고 쾌활하던 입 꼬리 웃음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동생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옆을 떠나버렸다. 나는 큰 동생과의 많은 추억들이 마지막의 그 눈 빛 속에 다 잠식되어 생각나지 않는 게  너무나 슬프다. 내 마음속에는 동생의 마지막 눈빛이 회한으로 남아있다.



  어느 추운 겨울 행색이 남루한 노인과 역시 비슷한 차림의 어린아이와 함께 길거리에서 빈병을 줍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는 옷차림에 마음이 아팠던 나는 만원 지폐를 건네면서 따뜻한 국물이라도 사드시라고 했다. 말라비틀어진 때 묻은 손으로 받아 드는 순간 나는 그분의 눈빛을 보았다. 아무런 감정의 표현이 없는 텅 빈 눈이었다. 고통도  기쁨도 없는 텅 빈 눈은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돈을 받자마자 그분은 내 앞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내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옮겼는데 이미 사망했다는 의사의 선고를 들었다.


  인사차 찾아온 그분의 아들로부터 그분은 치매로 오랫동안 집을 떠나 노숙생활을 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기억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자식도 몰라보고 집도 못 찾는 아니 있는지도 모르는 텅 빈 마음. 수치심도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통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그렇다고 갓난아이 같은 순수함은 이미 퇴색해버린 정말 공허한 잿빛 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눈빛은 다 슬프거나 고통이나 체념 공허로 가득 차 있었다. 전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눈빛들이었다. 행복에 반짝이고 욕망에 번뜩이고 희망에 부풀고 사랑에 몽롱한 눈빛들은 왜 기억에 남지 않은 걸까. 인지하든 아니하든 죽음을 대면한 순간에 인간의 눈빛은 가장 숨김없이 내면을 드러내기 때문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에 예민한 나의 내면 때문인가.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눈빛을 더 이상 발견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그 눈빛을 알아채고 늦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너무 무지하거나 늦어서 그들의 불행을 놓치고 지나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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