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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영 Mar 05. 2022

7. 빌라촌

  한 삼십 년 전쯤 이 동네는 부촌으로 유명했다.


  큰 집, 널찍한 대문, 높고 긴 담장, 집집마다 까만 세단 자가용과 운전기사들은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동네 터주 대감이던 우리 집은 삼층 빨간 벽돌집에 연못이 딸린 정원이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IMF 이후  동네 집주인들은 하나하나 사연을 남기며 집을 떠나갔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사업을 정리하시고 고향으로 가시고 그 빨 간 벽돌집과 넓은 정원은 경매에 부쳐져 각층마다 주인을 달리했다.


  나는 아버지가 거처하시던 3층을 경매로 샀다. 부모님과의 추억을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굳이 이사를 했다. 다른 집들은 전문 집장사들이 사더니 허물어 버리고 빌라를 지었다. 기존 동네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서 인지 산이 있고 지하철이 가까운 덕인지 빌라들은 짓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기를 이십여 년 이제는 옛날의 집들은 한두 채 정도 남아 있으려나 그 동네는 완전한 빌라 촌이 되었다.


  대문 안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던 조용한 동네가 시끄러워지고 차 소리 사람 소리로 밤낮으로 시끄럽다. 골목골목마다 저녁이면 빽빽이 차들이 주차되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이다. 쓰레기는 제대로 분리도 되지 않고 무더기 지어 널 부러져 있다. 이 집개가 짖으면 저 집개도 따라 짖고 사람 소리 개소리가 조그마한 방 창문을 넘어서 연이어 들린다. 누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는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아도 서로 훤하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몇 집 건너 다세대 주택에 방한 칸을 얻어 살고 있다. 출근길에 오며 가며 인사를 드리고 점심값 하시라고 만원씩 드리면 괜찮다고 굳이 거절을 하신다. 굽은 허리는 키 대신 살아온 세월의 흔적만 가늠할 수 있고 흰머리 사이로 주름진 얼굴과 꼭 다문 입에는 자존심이 묻어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동정한 것 같아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앞집 작은 빌라 이층에는 오 분 거리에 분식집을 하는 젊은 부부가 산다. 남은 음식을 정리해서 한 손에 들고 늦은 밤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면 늦게 까지 기다리던 아이들이 달려 나와 간식 봉지를 받아 들고 서로 조잘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한다.

  우리 집 일층에는 은퇴한 부부가 산다. 늙은 부모님과 빌라 앞뒤 집에 사는데 집 앞 작은 공간에 텃밭을 가꾸어 상추 고추 심어 부모님과 나눠 먹는다. 가끔 퇴근하고 오면 우리 집 현관에도 상추가 담긴 까만 비닐봉지가 인정스럽게 달려있다.

  이층에 사는 젊은 부부는 주말이면 좁은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대패 삼겹살을 굽는다. 남편과 꼭 빼닮은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여섯 식구가 화목해 보인다.

  골목 오래된 작은 원룸에 혼자 사는 총각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보살핀다. 도대체 저녁만 되면 어디서 오는지 고양이들 소리에 온 동네가 시끄럽다.

  삼층의 우리 집은 무거운 생수를 주문하면 택배 아저씨가 싫어한다. 어떨 땐 대문 앞 골목에 그냥 두고 가버린다 그래도 가져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곳에도 빈부차가 있다. 조금 넓은 평수의 새로 지은 빌라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주차장엔 제법 이름 있는 외제차들도 있다. 자동 출입 개폐가 있어서 보안도 되어있다. 오래되고 단칸방으로 이루어진 빌라는 주로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나 노인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도토리 키재기라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저마다 각기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우리 빌라 촌이 들썩이고 긴장하기 시작한다. 지하철 바로 앞 큰 도로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분양이 마감됐다고 한다. 오래된 주택가들과 이미 기능을 잃은 시장 골목들이 전부 재개발 허가가 났다고 하니 이 근처도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은 시간문제이겠다. 낮은 초목만 있던 숲 속에 뽐내며 소나무가 자라듯 쑥쑥 들어설 아파트들이 그려진다.


  빌라 촌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 가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새댁들은 남편에게 아파트로 이사 가지고 조를지도 모른다. 지나가면서 보게 될 그 아파트를 보고 부러워하며 언제 저런 곳에 살아보나 하고 이를 물고 더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겠지. 아파트에 살게 될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값을 걱정하며 빌라 촌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고 경비원을 닦달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는 집에 따라 또는 평수에 따라 어울리는 친구들이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과 자신의 신분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지상정인지 우리나라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자격지심인가 불현듯 이 동네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집에서 보이던 앞산의 경치가 가려지고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속상하다. 마치 큰 나무 그늘에 가려져서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음지 식물이 된듯하다. 나 자신이 도태되거나 사라질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50여 년을 살아온 이 동네를 떠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엄두도 안 나고 워낙 집값들이 비싸져서 현실적으로도 무리라는 생각에 다시 생각을 누른다. 딱히 이렇게 잘 지은 넓은 집을 두고 아파트로 간다는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옥상의 화초들과 장독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안방에 열두 자 장롱은 어디에 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간들 사람 사는 거 비슷할 거다라고 위안을 하면서 눌러 살 결심을 한다.



 우리 동네처럼 대저택이 많던 동네가 빌라 촌으로 변한 경우는 우리나라의 경제의 굴곡 점을 보여준 특이한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생태계가 외부 내부 요인으로 붕괴되고 나면 일차 천이 단계가 발생하여 키 작은 초목들이 번성하듯이 경제위기로 초토화된 동네에 새로운 식생인 빌라촌이 자라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 생태계도 바뀌겠지. 빌라촌은 어떤 모습으로 변천할까. 아파트들이 노후되고 나면 여기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진화된 주택단지를 형성할지도 모른다. 늙은 아파트들을 제치고 지금 보다는 더 성숙하고 또 다른 모습의 아름다운 동네로 변신하면 좋겠다. 이 빌라촌의 극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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