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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영 Feb 20. 2022

8. 장독 삼대

  우리 집 옥상엔 장독이 세 개 있다.


  한 단지는 할머니가 담으신 거다. 이 집이 지어지기 전에 담으신 거니까 한 삼십 년 된 된장이 그득 있다. 어릴 적 기억이라 명확하진 않지만 시골에서 콩을 팔아 오셔서 뒷간 부뚜막에서 콩을 불리고 삶으셨다. 구수한 냄새가 학교 마치고 땀을 흘리고 들어가면 온 집안에 가득 펴져있었던 걸 보면 아마 늦여름쯤 인가 싶다. 그리고 뒷마당 그늘에 달려있던 메주와 아랫목에서 꿈꿈 하게 진동하던 그 냄새들이 기억난다. 장독대 단지에 메주를 채우고 소금물을 붓던 할머니의 모습이 드문드문 기억난다. 그때는 무엇을 하시는지 관심도 없고 그저 지나가며 흘낏 보고 냄새로 기억하는 모습이지만 아마 장 담그기가 일 년 내내 계속되는 작업이었던가 싶다.

  할머니의 된장은 항상 짰다. 그래서 식탁 위에 오르는 된장도 항상 짙은 갈색에 덩어리 진 짭조름한 맛이었다. 지금 식당에서 사 먹는 심심하고 담백한 된장찌개와는 전혀 다른 맛과 색의 찌게였다. 어릴 땐 이 짠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그런데 늘 입맛 없다던 할머니도 그 된장으로 밥을 끝까지 드시던 걸 보면 무슨 중독성이 있는 맛이 있나 보다 여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장독대엔 된장 한독이 남았다.


  된장 담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절대 엄마 손으로 넘어오지 않으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된장을 너무 짜다고 하셨다. 그리고 손수 된장을 담기 시작하셨는데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드는 과정은 생략하신 듯하다. 천주교회에서 만드는 메주를 사 오시더니 된장을 뚝닥 담으셨다. 과연 그 된장은 할머니의 것과 달랐다. 노란 빛깔을 띠는 된장은 콩알이 반은 살아있고 그냥 고추를 푹 찍어 먹어도 짜지 않았고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났다.

  어느 날 된장찌개에 동동 뜨는 구더기를 건져내는 걸 보고 기겁해서 그다음부터는 엄마 된장을 먹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파트에 살 때 친정에서 된장을 받아먹곤 했는데 처음에는 할머니 된장 그다음에는 엄마 된장이었다. 할머니 된장은 그냥 베란다에 두어도  맛이 변하지 않았지만 엄마 된장은 꼭 냉장고에 보관해서 먹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엄마 집으로 이사하고 엄마는 자그마한 아파트로 옮기셨다. 이제 엄마도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돌아가시기 두 해 전에 메주 한 보따리를 들고 우리 집에 오셔서 된장 한 단지를 가득 담아주셨다. 사시는 집이 아파트라 된장을 담으실 수가 없다며 오셔서 담아 두신 거다. 그리고 우리 집 옥상에는 된장 단지가 두 개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된장 담기였다. 돌아가시고 한 달쯤 지난 사월 중순 왠지 해야 할 것 같은 사명을 이어받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된장을 담아 보기로 했다. 해마다 엄마에게서 된장을 얻어먹던 동생 얼굴이 떠올랐고 그리고 나는 사 먹는 된장 맛을 싫어한다. 아마 죽 집에서 만든 된장만 먹어서 일거고 사 먹는 것은 할머니 엄마 냄새가 나지 않아서 싫었다. 미국에서 산 8년 동안 한국에서 부쳐준 된장을 받아먹으며 살았을 정도다. 나는 발품을 아끼려고 인터넷에서 국산 콩으로 만든 메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보며 된장 담그는 법을 숙지했다. 옥상에 비어있는 단지에다가 설명서대로 된장을 담고 이제 두 달 동안 숙성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햇빛이 좋은 날에 뚜껑 열고 환기도 시키고 자주 들여다보는데 웬일인지 자꾸 파랗고 하얀 곰팡이가 낀다. 무언가 잘못했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곰팡이를 걷고 소금을 더치란다. 그러기를 몇 번 이제 열흘만 더 기다리면 된장 가르기를 한다. 된장과 간장을 나누는 작업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란 걸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지 모르나 처음 담아보는 나로서는 긴장과 기대와 떨림이 있는 일이다. 정말 맛있게 되어서 동생들에게 가까운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그리고 성공하면 매년 된장을 담으리라 결심도 해본다.


  이렇게 우리 집 옥상에는 삼대 된장 독이 있다. 


  할머니의 된장 맛은 깊고 진하며 먹을수록 빠져드는 감칠맛이 있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의 맛이 있다. 다른 야채를 많이 넣으면 된장찌개 맛이 씁쓸해진다. 그래서 파 매운 고추 마늘 이 세 가지만 넣어야 제일 맛있다. 전쟁과 보릿고개를 지나며 홀몸으로 6명의 자식을 키우시느라 흘린 눈물의 맛과 행상으로 번 소소한 돈으로 풍족히 먹을거리를 살 수 없어 아껴먹어야 했던 장맛이 짜게 진하게 표현된 맛이다. 

  엄마의 된장은 풍부하고 구수하다. 야채를 많이 넣고 고기를 듬뿍 넣으면 재료의 맛이 살아난다. 된장의 진한 맛보다 들어간 재료의 맛을 더 살려준다. 담담하고 자신보다 자식을 더 내세우시고 싶어 하시던 엄마의 마음이 층층 시집살이에서 모든 것을 품지 않으면 화합할 수 없어서 자신을 죽여야만 했던 시집살이의 고충이 별난 남편에게 자신을 죽이고 맞추어 살아야 했던 삶들이 묻어있는 맛이다.

  두 분의 된장에서 두 분의 인생을 맛본다. 그 삶이 그대로 녹아져 묵히고 있는 된장 뚜껑을 열 때마다 겸손해지고 두 분을 대하듯 조심스럽다. 그분들의 사랑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한 점이라도 흘릴까 조심하고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까 조심한다.


  음식은 오감으로 먹고 감성으로 느낀다. 나는 두 분의 너무나 다른 된장을 둘 다 좋아한다. 나의 된장은 어떤 맛일까. 내가 각기 다른 할머니와 엄마의 된장 맛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듯이 나의 된장에서 맛깔난 인생임을 눈치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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