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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뱅이 Jan 24. 2023

로마법을 따르는 것도 나쁘진 않네

독일 현지에서 먹는 첫 번째 식사였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긴 했으나 어느 호텔을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서양식 아침 식사였으니 진짜 현지의 독일 음식을 먹었던 첫 번째 끼니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음식이 새로운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서양 음식에 독일의 맛을 조금 가미한 느낌. 그러나 언제나 처음은 특별한 법.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한 독일 남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독일 남성 : 제가 사진 기자인데 사진 찍는 법 좀 알려줄까요?

나 : 어…


무턱대고 내가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고개를 돌려 여자친구를 쳐다보았다. 눈빛을 보니 나와 같은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도 약간 애매한 상황.


나 : 하하, 알려주시면 고맙죠^^




캐리어를 받기 위해 공원에 머문 날이었다. 잉글리시 가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숲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공원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니 독일 사람들은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3월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쌀쌀했고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산책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캠핑카에서 나와 그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산책을 하던 어떤 한 독일 남성이 개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독일 남성 2 :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당황. 아니, 왜 도대체 우리한테 말을 거는 건데. 아시아인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현지인들에게도 말을 쉽게 거는 것인가.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캠핑카를 타고 3달 동안 유럽을 돌아다닐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 : 이제 이탈리아 쪽으로 넘어가려고요.

독일 남성 2 : 그래요? 그러면 오스트리아로 가겠네요?

나 : 그러겠죠?

독일 남성 2 : 제가 오스트리아 여행지 좀 알려 드릴까요? 유명하진 않지만 괜찮을 거예요.

나 : 저희야 좋죠!


유럽 현지인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차피 매일매일 빡빡하게 계획을 세워둔 것도 아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괜찮아 보이면 멈춰 설 수 있는 게 바로 캠핑카 여행 아니겠는가.


사실 오스트리아는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좋은 곳을 알려준다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 당연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Mr. 해피 가이. 그에겐 미안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빨리 캠핑카로 돌아가고 싶었다.


대화가 끝나고 캠핑카로 돌아가는 길. 여자친구와 나는 그를 "Mr. 해피 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의 이름을 모르기도 했지만 대화를 하는 내내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말에는 행복이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그와의 만남은 그곳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왠지 그를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얼마나 좋은 곳이면 그렇게 강력 추천을 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에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 변경했다.  




두 경우 모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 같은 경우는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공원은 현지인들이 주로 오는 곳이었을뿐더러 우리가 캠핑카를 끌고 온 아시아인이었으니 눈길을 끌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첫 번째 경우는 좀 뜬금없지 않은가. 카메라를 들고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양인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아니, 여긴 뭔데 아시아 사람들이 많아’하며 놀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을은 ‘Erding’이라는 곳이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Erdinger 밀맥주가 탄생한 마을.


Erding에서 즐겼던 신선한 Erdinger 생맥주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 신기한 존재도 아닌데 그 독일인은 어째서 친구에게 하듯 우리에게 말을 걸었을까? 서양인들이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거야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호주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었다. 여자친구도 마찬가지.


한국이었다면 90% 이상의 확률로 ‘저 사람이 왜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그만 얘기하기를 바랐겠지. 혹은 '도를 아십니까' 류의 사람이지 않을까 걱정하거나.


하지만 유럽이라는 공간과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더 개방적으로 만들었나 보다. 비록 신호도 없이 무턱대고 들어오는 자동차처럼 말을 걸어온 게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생각했던 목표 중 하나가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내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유럽에 도착한 지 이틀도 채 되지도 않은 시간에 두 번이나 독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먼저 말을 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 만남으로 끌어당겼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조우가 우리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여자친구나 나나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유럽 사람들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듯싶었다.


그러나 적어도 다가오는 만남은 밀어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현지인들과 적극적으로 어우러지는 게 내 목표를 이루는 데 알맞은 길임이 분명했다.


더구나 단순히 관광으로만 시간을 허비할 만큼 짧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3개월이란 긴 여정이 남아 있었으니 현지인들을 만나 그곳의 문화를 느끼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연 어떤 만남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하는 기대감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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