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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모험가 Jun 07. 2022

수잔 언니의 콩국수

포틀랜드 킨포크 테이블(Portland Kinfolk Table)

  나는 콩국수를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 무슨 맛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맛이 좋아진다. 어릴 적 엄마가 콩국수를 해주시곤 하셨는데 두유같이 희뿌연 국물에 쫄깃쫄깃한 국수를 말아먹으면 시원하지만 밍밍한 맛이 그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라고 엄마에게 되묻곤 했다. 그런데 그 콩국수가 좋아지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고소하고 진한 시원한 얼음 동동 콩국물에 쫄깃한 면발의 궁합 더구나 오이를 얹으면 그만이다. 거기에 금방 담근 겉절이를 얹어 먹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콩국수를 먹으며 시원하게 더위를 나기도 하지만 고기가 비싸서 가난한 서민들은 단백질을 보충하고자 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든든하게 콩국수 한 그릇 먹고 무더운 여름을 나는 것이다.


포틀랜드에 처음 왔을 때 1년간 살 아파트를 구해야 했다. 마침 그때가 포틀랜드의 집세가 오르는 중이었고 물량도 없어 좋은 집을 구하는데 난항이었다. 아무리 1년 살 아파트이지만 맘에 드는 곳에 살고 싶었다. 회사에서도 2주 정도 기숙사를 제공하고 그 뒤에는 우리가 구해야 한다.  마침 미국에 오기 전 혹시 몰라 온라인 카페에서 민박집 연락처를 적어왔었다. 연락하니 마침 방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2주 정도 그 민박집에 머물게 되었다. 머무르면서 레이크 오스위고라는 매우 아름다운 곳의 아파트를 계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민박집 아줌마네 가족과 함께 2주간 생활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밥은 자유롭게 식자재가 있어 해먹으면 되고 주인아줌마나 우리가 요리를 할 경우 같이 먹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그때 그 민박집  아줌마가 해주셨던 콩국수가 떠오른다. 낯선 타국에서 더구나 한국적인 음식인 콩국수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콩국수 좋아해요?”

 “너무 좋아하죠.”

 민박집 아줌마는 콩을 삶고 계셨다.

“어머~ 여기도 한국에서 먹는 그런 콩이 있나요?” 나는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한인마트가 있어서 없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콩국수를 해주신다고 하셨다. 삶은 콩을 믹서기로 갈고 콩을 간 물에 삶은 국수를 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얼음을 둥둥 띄워서 먹는다. 더운 여름에는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남편과 나는 한국이 그리워 더욱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은 맛이 없지만 사양하기가 뭐해서 내가 어릴 적에 그러했듯이 깨작거리며 먹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 민박집 아줌마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고 그 아줌마를 나는 수잔 언니라고 불렀다. 미국 생활을 하다가 가끔씩 집에 놀러 가면 의례 언니는 콩을 삶으신다. 그래서 아이들은 “왜 수잔 이모는 맨날 콩국수만 해주셔?”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 아이들도 먹어서 언니는 아이들도 좋아하는 줄 아셨다. 그런데 차마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놀러 가니 “콩국수 해줄까?” 하니 아이들이 “아니요~~” 라며 큰소리로 얘기한다. 이미 아이들 마음속에는 수잔 이모는 콩국수라는 등호가 성립되었다.




이제는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포틀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이 콩국수의 맛을 이해할 때가 오겠지? 그때 이 포틀랜드에서 먹었던 콩국수도 이야기하게 되겠지. 포틀랜드에서 콩국수를 먹고 싶다. 그 맛이 그립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이미지제공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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