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까르르 웃음소리에 잠시 멈춘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여기는 00 초등학교 학습준비물실이다. 나는 하루에 4시간 여기서 일을 하는데 각 반에 필요한 학습자료를 만들거나 복사하거나 학습도구를 준비해 놓는다. 그러면 각 반 아이들이 와서 가져가거나 선생님이 오셔서 픽업을 하고 다음에 반납을 한다. 즉, 내 업무는 학습준비물실에서 운영하고 관리를 하는 것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창문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형광등 자체가 밝아서 그런지 눈이 부셨다. 'ㄷ' 형 큰 수납장이 천장에 닿을락 말락 했고 1/2 이상 닫혀 있는 상태였다. 가운데는 일자형 롱 책상 위에는 코팅기, 제본기가 있었고 아래에는 코팅지, 제본스프링 등이 쌓여 있었다. 창가 쪽에는 1인용 책상에 컴퓨터와 칼라프린터가 놓여 있고 옆에는 큰 복사기가 있었다.
업무 지시한 선생님은 어떻게 무엇을 할지 알려주면서 첫날에는 수납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란다. 첫 번째부터 수납장 아래부터 위까지 훑으면서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열고 닫는 것이 은근히 힘들어 나중에는 다 열어놓고 멀리서 한참 쳐다봤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겼다.
첫 번째 수납장은 직원 사물함이었다. 그 안에는 옷걸이는 있었지만 옷을 걸만한 봉이 없었다. 봉이 왜 없지?
두 번째 수납장은 실, 바늘, 모루 등이 있다. 세 번째 수납장은 장난감 시계, 주사위 등이 있었고 (아마도 수학 도구일 듯), 네 번째 수납장은 특유한 냄새가 나는 뽀로로 크레파스, 빼꼼 크레파스가 보였다. 다섯 번째 수납장은...
총 80번째 수납장을 보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습자료가 정리가 덜되어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얘기 들어보니 학습자료실이 이곳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천천히 정리하라고 하는데 정리하는 것도 일이겠다 싶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무엇을 먼저 정리를 해야 할까?
우선 직원 사물함이다. 옷을 걸만한 봉이 없으니 계속 의자에 걸쳤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시설팀에 전화를 걸었다. 옷을 걸만한 사물함 봉을 설치해 달라고... 다음날 오셔서 줄자로 재더니 어딘가로 전화하면서 주문을 하더이다. 일주일 후 봉을 설치해서 그제야 옷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자료를 정리를 해야 하는데 80개 수납장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양면테이프, 스카치테이프, 종이테이프였다. 테이프 있는 곳에 뜯지도 않은 박스가 있었고 크기도 뒤죽박죽이었다. 근데 박스 안에 또 박스가 나왔고 그 안데 테이프가 한가득이었다. 우선 다 꺼냈는데 어느 위치에 둬야 할까? 아무래도 테이프 자주 사용할 것 같으니 문 옆 수납장에 두기로 했다. 한 수납장에 3개로 나눠져 있기에 맨 위칸에는 넓고 큰 테이프(50개 넘음), 중간에는 중간넓이 테이프, 마지막칸에는 가장 작은 테이프를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안에 테이프가 있다는 것을 수납장 문짝에 번호와 라벨을 붙였다. 다른 자료도 이런 식으로 계속 정리하였고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정리한 것 중에 가장 뿌듯한 것은 색종이다. 색종이도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분류하는 것도 일이었다. 단면색종이, 양면색종이, 한지색종이, 금은박색종이, 꽃무늬색종이, 동물무늬색종이... 크기도 다양하다. 10*10cm, 5*5cm, 7*7cm, 20*20cm... 거기다가 세트로 있는 것도 있지만 색깔별로 묶음으로 나오는 것도 있다.
어떻게 정리해야 되나.. 오죽하면 도서관에 가서 정리수납책을 보거나 유튜*나 *글, *이버 검색도 했다. 하지만 주방이나 옷정리는 많이 있지만 문구 정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중에는 알파문고나 교보문고까지 방문해서 어떻게 정리하고 분류했는지 일 때문에 구경하기도 했다. 직업 정신이 너무 강한가?
이제 6개월째 접어든다. 처음보다 조금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리를 한다. 이번에는 물감 정리.. 튜브용 물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하나씩 짜본다.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