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작고 낮은 편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어떤 물음에 기껏 대답을 했는데 '예?' 하고 조금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못 들었다는 듯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작고 낮게 대답한 내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낮은 목소리가 주는 몇 가지 개인적인 불편사항이 있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기분이 안 좋냐' 같은 것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던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 무서워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그뿐만이 아니라 약간 느리게 눈을 끔뻑거리는 버릇까지 있어서 졸리냐, 아프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건강이나 기분상태를 표정만으로 지레짐작하는 일을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한다.
참 웃기고 조금 속상한 일이다.
가끔 내 목소리가 높고 쾌활해서 듣는 사람도 힘이 나는 그런 목소리라면 어떨까, 그럼 나도 좀 활기차고 상냥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연습을 해봤지만 노력할수록 목구멍이 죈 듯 아프고 듣기 싫은 소리만 나는 것 같아 관뒀다.
하-하고 목에 힘을 풀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낮은 소리를 여간해선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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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목소리가 높고 명랑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목소리를 어디쯤에 얹어야 좋을지 걱정스러워진다.
명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쭈뼛거리다 말이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함구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듣는 시간을 길게 할 수 있고 할 말은 바르게 정돈해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 내성적이신가 봐요?"라는 말이 돌아올 땐 뭐, 어쩔 수 없이 "아.. 네"라고 해버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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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웅얼웅얼 낮은 소리를 끈기 있게 듣는 사려 깊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내 목소리보다 목소리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은 "네 목소리가 그렇게 낮았나? 글쎄.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네"라고 말할 뿐이다.
그럴 때면 그 말속에서 은근한 위안과 애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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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시그널이 맞아 대화의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 있다.
목소리나 의례적인 말은 걷어내고 말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그가 내게 주는 말들이 소중해서 낱말과 문장을 곱씹고, 내가 말할 때는 그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며 눈을 감고 말할 때도 있다.
서로를 향한 유연한 대화의 흐름을 사랑한다.
그런 대화가 자주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더 아름답겠지만 어쩌다 주어지기 때문에 아쉽기도, 소중하기도 하다.
오늘을 맞으며 오늘은 혹시 그런 기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속에 목소리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