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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n 15. 2021

무미건조한 하루

시시한 버킷리스트

하루정도 온전히 내 시간이 있다면 무얼 할까.

언젠가 갑자기 주어질지 모를 그 하루를 위해 틈틈이 생각해두며 메모까지 해둔다.

그러다 보면 오늘 같은 무미건조한 하루를 사는 것도 그럭저럭 가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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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온전한 나만의 하루가 생긴다면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씻을 것이다.

내친김에 얼굴에는 팩도 붙이고 머리에 헤어팩 따위를 듬뿍 발라서 5분 정도 여유 넘치게 헤어캡을 쓰겠다.

옷장에서는 가슴팍에 거추장스러운 단추가 많이 달린 원피스를 꺼내 입고 부드럽게 준비된 머리카락에는 헤어롤을 정성스럽게 말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려마시겠다.

화장도 하겠다.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 눈에도 아이라인을 그려야겠다.

아니면 아주 늦게 일어나서 피자나 시켜먹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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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예쁜 카페에 가겠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조용하고 넓은 카페에서 낮이 다 지나도록 오래오래 이야기를 하겠다.

만날 수 있는 지인이 없다면 밀린 책을 쌓아두고 아주 천천히 읽고 싶다.

에세이 3권, 시작도 못한 책 2권.

그래도 서점에 가야겠다.

마음에 드는 책의 첫 장들을 읽어보며 다섯 권 정도 사고, 근처에 대형 문구센터에서 온갖 볼펜을 딸깍거리며 시험해보고 쓰지도 않을 다이어리를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사겠다.

저녁에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번화가를 쏘다니고 싶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계획 없이 덥석 사고 시원한 음료와 맛있는 초밥을 먹어야지.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이좋게 발맞춰 공원도 천천히 걸어 다니다 들어오겠다.

밤에는 거실에서 TV 볼륨을 크게 키우고 치킨도 먹으면서 시끄럽게 웃어야지.

그러다 마음에 드는 대사도 따라 할 수 있는 흥행했던 한국 영화를 보겠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같은.

서로 따라 하며 누가 더 배우 같나 왁자지껄 떠들어야겠다.

아니면 내친김에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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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반드시 무미건조했던 오늘 같은 날을 살고 싶다.

우리 가족이 함께 눈을 뜨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이 종일 밀어닥치는 오늘과 같은 날.

나 혼자 여유를 곱씹다 상념에 빠질 틈도 없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빽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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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고 아무 일도 없어 감사한 오늘 같은 하루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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