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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l 03. 2023

불현듯

의자

불투명한 몸뚱이를 가진 너는 읽기가 어려워.

겉옷으로 너를 꽁꽁 동여매고도 모자라 냄새가 없고 모양도 없는 모호한 말들로 높은 담장들을 올려둔 너는 정말 어렵다.

맑은 표정뒤로 얼핏 슬픈 기색이 보일 때 불투명한 그것을 알아본 내 눈이 원망스럽지만 일단, 너는 다 좋은 듯이 웃고 있으니. 그걸 꼬집어 물을 수는 없겠다.

소란스러운 울림이나 너무 맑은 날씨도, 다들 그렇게 태연함도, 아무런 시름없음도 다.

너는 다 무력해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작게 웃음 짓고 날이 쓸데없이 맑다며 한 소리 거들어주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실 아는 게 중요한가, 안다는 건 뭘까.

우리가 ‘나는 너를 알아’ 라며 붙은 모든 짐작에 환멸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안다. 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우리는 그저 내내 길을 걷다가 불현듯 피로를 느끼고 잠깐. 잠깐 앉았다가 다시 중요한 일이 생각이라도 난 듯 훌쩍 가버려도 좋은, 그런 사이라면 좋겠다.

나도 의도치 않게 약간의 서운함을 주고, 그만큼의 이해를 무심하게도 바라는.

‘앎’으로 규정할 수 없는 너와 우리의 모든 불투명함이 앉고 앉히고 서운해하다 이해하고 다시 불현듯 네가 생각나기를 반복하는 끊임없는 계절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고.

“불현듯.이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 건 줄 알아? “라는 질문은 받은 날. 아 그랬던가.

지금은 여름의 초입이고 너는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지. 떠올리고 잘 지내고 있는지.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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