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담그며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자들의 수다가 예상된다. 오랜만에 미녀삼총사가 뭉쳤다. 바로 김장을 하기 위해서이다. 금요일 퇴근 후 시골집에 모여 각자의 양념과 절인 배추를 가지고 김치를 담그고 수덕사와 온천여행을 계획했다. 며칠 전부터 플랜을 짜고 각자의 짐을 들고 모이니 9시가 가까웠다. 먼저 도착한 아낌 언니와 세움 이가 밥을 해놓고 보쌈고기도 삶고 있다. 도착해서 절인 배추의 물이 빠지게 광주리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저녁밥을 먼저 먹고 시작하기로 했다. 무생채 뚝딱하고 보쌈고기와 함께 막걸리 한 병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양념준비는 내가 맡았다. 붉은빛 도는 갓을 씻어서 바구니에 담아놓고 초록빛과 흰색빛이 도는 싱싱한 쪽파와 대파도 씻고 마늘과 생강 씻어서 다용실 선반에 있는 믹서기를 꺼내 갈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식은 밥을 넣고 갈아서 김치를 담그지만 겨울김치는 찹쌀풀을 넣는다. 마늘, 생강 넣고 드르륵, 드르륵 갈다가 무를 믹서에 넣고 갈아 넣으면 시원한 맛이 나고 채 썰어 넣는 것보다 김치가 더 깔끔하다. 믹서기가 한참을 돌아간다. 육십 포기가 넘는 김치를 비빌양이니 양념이 어마어마하다. 씻어놓은 갓 여섯 단, 쪽파네 단, 대파 한 단 , 무도 몇 개는 갈고 다섯 개 정도는 채를 썰어놓고 보니 대야 가득 재료가 찼다.
모인 재료를 붉은빛 타원형 대야에 담으니 양념이 그득하다.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형님이 농사 지어주신 고운 태양초 가루 육 킬로그램, 멸치액젓 3킬로, 새우젓 1,5킬로그램을 넣고 봄에 담가놓은 보리수 액과 설탕 일 킬로는 넣고 버무리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던 재료가 점차 섞이며 각자의 역할을 하며 양념에 베기 시작한다. 갓과 쪽파, 무의 색이 없어지며 빨간 양념으로 물들어 갈 때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맡믐 열중했다. '언니, 간이 맞나 봐요?'라는 말에 손으로 콕 찍어 먹어보더니 '어쩜 이렇게 한방에 간을 맞추냐'라며 활짝 웃는다.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양념을 버무리기로 했다.
세 여자의 수다는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 믹서기를 갈면서도, 무채를 썰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일은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고 대화를 한다. 말을 하면 딱히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각자 가지고 온 김치통을 갖고 주황색 김장매트를 펼치고 동그랗게 앉아 노른 빛 나게 절여진 배추에 빨간 양념을 무친다. 손과 눈은 양념을 치대지만 입은 여전히 수다삼매경에 깔깔거린다. '아구 허리야', '우리 시방 뭐 하냐?' 농담 삼아 던진 말도 힘이 된다. 밤이 길도록 힘든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얼굴은 '하하, 호호, 거린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다 보니 한 시간가량 후 육십 포기의 김장이 마무리되었다. 시간은 새벽 두 시다.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뒷곁에 있는 길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넣어주고 뜨거운 물 한잔을 들고 잠시 정원을 들러보고 어젯밤 삶아놓은 배추시래기를 넣고 쌀뜨물을 받아 된장국을 끓였다. 약불로 은근히 오래 끓이면 더 구수한 맛이 난다. 썰고 남은 무를 냄비에 넣고 냉동실에 있던 멸치 몇 마리 넣고 간장과 고춧가루 넣고 오래 졸였다. 일어나서 마주한 아침상, 어젯밤 버무린 배추김치와 무조림, 배추된장국에 흰쌀밥을 차렸다. 소소한 밥상이지만 무조림이 맛있다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본다. 그렇게 아침 식사 후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추수가 끝난 논이 주는 평화와 먹이를 찾아 날아가는 겨울철세떼들의 장관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일상이 평안함을 느낀다. 모월저수지를 지나 갈대밭길을 걸으며 햇살이 따사로이 등을 비춰주니 더 좋다. 모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 한 시간 반가량 걸어서 도착한 카페는 우리가 첫 손님이다. 시골동네에 3층짜리 카페라니, 흐니색건물과 실내에 원목 테이블이 놓여있고 테이블마다 생화가 꽂혀있다. 창가에 백합이 꽂아져 있는 자리에 앉았다. 화장실 간 친구를 대신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 직접 달였다는 대추차 두 잔을 시켜놓고 '좋다' 휴일의 여유를 즐겨본다.
창밖의 정원풍경은 돌다리가 놓인 네모난 연목이 있고 소나무를 그대로 사리고 담벼락은 대나무를 심어 자연미를 추구했다. 잔디마당 한쪽에는 가족끼리 즐길 수 있는 야외용 테이블이 있고 피라미드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와도 좋을 것 같다. 주말에 결혼식이 있었는지 자작나무로 만든 기둥에 흰색 웨딩꽃이 남아 있어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십 분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씻고 외출준비를 했다. 다음코스는 온천이었으나 어젯밤 김장이 너무 늦게 끝나 목욕탕을 간 다음 서산동부시장을 구경하고 시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목욕탕에서 어젯밤 김장으로 인한 피로를 푼 다음 동부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장구경에 나섰다. 김장철이라 그런지 팔딱팔딱 뛰는 민물새우를 파는 좌판이 많다. 동부시장은 지붕을 덮은 재래시장으로 생선을 말려서 파는 골목이 있고 살아있는 생선과 회를 파는 골목이 분리되어 있다. 시장 곳곳 옛날치킨, 호떡집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엄마 손잡고 핫도그를 손에 든 아이의 모습이 귀엽다. 내장탕, 순댓국, 해장국을 파는 가게가 골목마다 있다. 세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지 못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 우연히 버스정류장 맞은편 이층에 있는 레스토랑'겨울나그네'를 발견했다. 돈가스정식을 파는 곳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일층은 표구점으로 옛날 그림이 놓여있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옛날 원목과 돌을 이용한 인테리어가 눈에 뜨이고 90년대식 레스토랑 분위기가 그대로 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고 식사 후 치우지 못한걸 보니 분명 맛집인가 보다. 자리에 앉아 돈가스정식과 치즈돈가스를 시키고 기다리며 세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겨울나그네 란 드라마가 방영 되던 그 시절로 돌아가나 듯하다. 잠시 추억여행에 빠졌다. 음식이 나오는데 제일 먼저 수르가 나오고 흰색 커다란 접시에 잘 튀겨진 수제돈가스 위에 소스가 뿌려져 있고 곱게 채 썬 양배추, 마요네즈에 버무린 마카로니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음식맛도 좋고 양도 많고 가격도 싸다. 추억여행 제대로다. 다음여행을 기약하며 잠시 이십 대 추억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여자 셋이 모이면 끊이지 않는 수다와 깔깔깔, 호호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