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음식
육십 년도 중반 화순군 도암면 가장 골짜기 마을인 용강리가 나의 고향이다. 마을을 빙 둘러싼 낮은 산과 맞은편 냇가에 호랑이가 누운 형상를 한 범바위산을 마주한 동네 맨 꼭대기 집에서 2남 4년의 넷째 딸로 세상에 나왔다. 작은 동네로 20여 가구의 집집마다 육 남매이상의 아이들이 골목마다 북적거렸다. 산과 들, 냇가를 놀이터 삼아 매일 놀이레 빠져 지냈던 철없는 꼬맹이 시절이 있었다.
산과 들 냇가의 놀이터는 계절마다 다른 색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성장시켰고 자라면서 부모님의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일찍 알아갔다. 동네 앞 점빵에 오십 원짜리 사탕하나 사 먹는 것도 엄마눈치가 보일 만큼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한한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었다.
봄, 온 산에 진달래가 분홍빛으로 덮으면 엄마는 산에 가서 진달래를 한광주리 따왔다. 항아리에 깨끗이 씻은 진달래꽃을 넣고 설탕에 재워 놓으면 어디가 좋은지 모르지만 엄마는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꼭 진달래 청을 담았다. 이른 봄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쑥을 캐다 된장 넣고 끓인 향긋한 된장국은 전용반찬이었고 넉넉하게 쑥이 깨지면 살짝 삶아 푸르스름해진 쑥을 물기를 꼭 짜서 하얀 쌀가루와 함께 시루에 켜켜이 넣고 쑥버무리를 쪄 주었다. 쌉싸래한 쑥이 향기와 설탕이 달달함이 입안에서 춤을 추듯 엄마는 우리에게 봄맛을 그렇게 느끼게 했다.
여름, 앞 냇가는 좋은 놀이터였다. 옷을 입은 채로 멱을 감고 바위에 올라가 점프도 하고 살짝 추워지면 햇빛에 나가 몸을 말리다 집에 돌아올 때는 돌을 들춰 숨어있던 다슬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하나, 둘 건져 올린다. 비릿한 냄새가 나면서 꼬물꼬물 한 입을 내밀고 숨을 쉬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 엄마는 학독에 지푸라기를 구부려 다슬기를 넣고 쓱쓱 비벼댔다. 다슬기 봄에 붙어있던 때를 벗겨내고 깨끗이 헹궈 바구니에 받쳐놓는다. 국솥에 된장 풀고 마늘 다녀 넣고 한소끔 끓이다 김이 주르륵 흐르면 입을 뾰족이 내민 다슬기를 톡 털어 넣고 한번 더 끓였다. 여름 마당에 덕석을 펴 놓고 오이냉국, 겉절이, 흰쌀밥, 다슬기 된장국 한 그릇씩 담아 밥상에 놓고 온 가족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된장국에 밥 말아먹고 국솥에 있던 다슬기를 쪽쪽 빨면 한 여름밤이 깊어가고 별빛이 반짝인다.
가을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 뒷밭 단감나무에 감이 익으면 학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감나무로 달려갔다. 제일 맛있는 단감을 따서 한 입 베어 물면 그 맛이 달콤하고 아삭거리는 것이 정말 맛있다. 고구마 밭에 잇는 고구마줄기를 따고 고구마도 몇 개 캐서 집으로 온다. 고구마순은 잎사귀부터 손으로 잡아 얇은 줄기를 벗겨내면 초록빛이 나온다. 다 벗겨진 줄기는 물을 끓여 살짝 데쳐서 된장, 식초, 설탕, 고춧가루 넣고 새콤달콤한 고구마줄기무침이 도밍고 남은 줄기는 솥에 깔고 자반고등어 한 손 올려 갖은양념 올려 김이 모락모락 오르도록 조려준다. 줄기와 함께 애호박도 자박하게 썰어 넣으면 저녁밥상이 푸짐하다. 흰쌀밥에 고등어와 고구마줄기무침이면 입이 터지도록 행복감이 맴돈다. 고등어보다 애호박의 달큼한 맛이 좋아 지금도 호박을 조려 먹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 흰 눈이 펑펑 내리면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온 세상이 하얀 나라로 변했다. 자고 일어나면 황톳빛이던 마당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빨간 내복 입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있으면 아버지는 대나무로 만든 빗자루 들고 마당에 쓱싹쓱싹 길을 내고는 소여 물을 가마솥 가득 넣고 소죽을 쑤러 가신다. 작은오빠와 함께 마당을 지나 고샅까지 빗자루질을 하고 나면 비로소 동네까지 길이난다. 길을 쓸고는 며칠 전 놓아두었던 올무를 살펴보러 오빠 따라 뒷산으로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는다. 오빠 발자국만 따라가면 쉽다. 어! 잠시 후 살펴본 올무에 무언가 걸려있다. 먹이를 먹으러 왔던 꿩이 걸려서 죽어있다. 오빠는 빼서 집으로 들고 온다.
엄마는 가지고 온 꿩을 솥에 뜨거운 물을 끓여 샘가로 온다. 펄펄 끓는 물에 꿩을 담그면 숭덩숭덩 털이 쉽게 빠진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서 똥을 버리고 알뜰살뜰 손질해서 간장 넣고 졸인다. 꿩 한 마리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겠냐마는 엄마는 꿩장을 짜게 만들어 놓는다. 솥에 물을 넣고 펄펄 끓으면 꿩장 한국자 넣고 떡국 한 바가지 넣고 푹 끓인다. 하얀 떡이 둥둥 떠오르면 참기름 한 방울 넣고 대파. 마늘 넣고 온 가족이 푸짐한 떡국을 배부르게 먹으면 추위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으며 두둑한 배로 인해 행복함이 충만하다.
엄마는 겨울이면 찹쌀을 불리고 붉은팥을 삶아 가마솥에 넣고 찰밥을 자주 해 주었다. 궁핍한 살림에 든든히 먹일 것이라곤 농사지은 쌀과 팥을 가지고 만든 음식이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찰밥을 가끔 해서 먹는다. 판을 넣고 만든 팥칼국수도 겨울 우리 집 단골손님이었다. 큰 암반에 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로 숭숭 썰어 털어서 서로 붙지 않게 만들어주고 삶은 팥이 끓으면 손칼국수를 넣고 끓이고 기호에 맞게 소금 설탕을 넣어 먹는 뜨끈한 팥칼국수가 생각난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먹었다. 지금도 봄이 되면 엄마의 쑥 향기 나는 쑥국이 그리고 여름이면 다슬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먹고 싶다. 쪽쪽 빨아먹던 다슬기 맛과 그 향이 그립다. 가을이면 아버지의 단감나무에 앉아 실컷 먹었던 단감도 고구마줄기 새콤달콤 무쳐서 밥에 쓱쓱 비며 먹고 싶던 그 맛도 그립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아무도 걷지 않는 눈길을 걸을 때면 오빠와 함께 걸었던 뒷산과 함께 잡았던 꿩을 넣은 떡국 한 그릇 든든히 먹고 싶은 마음, 우린 그렇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