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관계들이 피곤해요 - 지나친 배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관계 (2)

by 정신안아픔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가까운 관계에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착취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곤 한다. 그렇다면 거리를 둔 관계에서는 어떨까? 적당한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대체로 호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잘 맞춰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 과묵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감추는 사람 정도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대게 듣는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본인이 편안함을 느끼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들이 잘 맞춰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밉보이면 안 되고 타인에게 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다. 99명이 자기 자신을 사랑해도 1명이 자신을 미워하면 무너지는 것이 이들의 자아상이기 때문에 이들은 늘 과도하게 배려를 한다. 강박적인 비위 맞추기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본인을 소진한다. 따라서 이들은 관계에 거부감을 느끼며, 관계를 가능한 한 회피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보존하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이 부분의 증상이 두드러졌었는데, 아무리 관심 없는 이야기라도 끝까지 듣고 반응하기, 상대방이 하는 말을 중간에 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마저 미루기 등 상대방에게 거의 100% 모든 것을 맞추었었다. 그 결과 외출을 한 번 하고 오면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약속을 자주 잡는 것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타인이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먼저 알아채고 책임감을 느껴 그 부분을 배려하기, 나는 어렸을 때 이것이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이것은 배려가 아니다.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관계가 감당 가능해야 하는데 이러한 관계 맺음은 한쪽에 부담이 치우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엔 날 진정으로 좋아하고 오래 보고 싶어 했던 이들과도 거리를 차츰 두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던 결과가 아니기에, 결코 배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을 모두 책임져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는데 내가 먼저 나서서 책임감을 느끼는 것,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오지랖에 가깝다.


더욱이 100명 중 100명에게 모두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은 불가능한 목표 속에서 자신의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관계 속에서 거절당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관계 자체를 줄이려는 선택지도 드러난다. 이 경우 관계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이건 아니건 누구나 타인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회피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옥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는 결과가 되고 만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과도하게 신경 쓴 탓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부정적 감정들을 쉽게 숨기게 된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드러내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아야 타인들도 내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배려를 제공할 수 있다. 무작정 참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은 앞서 작성했듯 한쪽에 치우쳐진 관계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계 지속에 어려움을 형성한다. 이는 결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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