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쿰척 Jul 20. 2021

#2. 지금 어떤 시국인지는 아시는 거죠?

코로나야...사람들이 네가 위험한 줄 잘 모르는 것 같아.

오늘도 출근. 아무리 생각해도 목요일 같은데, 아직도 화요일이다. 왜 한 달, 일 년은 빨리 가는데, 일주일은 굼벵이처럼 지나가는 걸까. 주 4일제 도입이 절실하다. 어디서 주 4일을 하면 환경오염도 줄고 경제적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높은 분들은 뉴스도 안보 신 건가.


요즘 이 시국의 낌새가 예사롭지 않다. 영국은 락다운이라고 도시 전체, 나라 전체가 봉쇄던데. 우리나라도 예사롭지 않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다들 일찍 나오셨다. 집이 싫은 걸까. 회사가 좋은 걸까.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신저가 왔다. 이 망할 스카이프, 또 먹통이다. 재 로그인.

> 안녕하십니까? 또 창 눌렀더니 꺼져서 못 읽었어요. 왜용~?


하사원이었다. 

>>뉴스 봤어요? 이제 4단계래요! 6시 이후 2명 이상 집합 금지ㄷㄷㄷ 아 그나저나 다음 주에 그 이사님들 워크숍 간다고 하지 않았나?

> 헐~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내가 메시지를 마저 다 보내기도 전에 실장님이 일어나셨다. 

백실장 : 69년생, 남, 기혼, 대학생 딸 둘, 군인 아들 하나, 이 시대의 꼰대

>아니, 그럼 우리 워크숍 못 가는 거 아니야? 이사님께 가봐야겠네.


이번 워크숍은 그동안 코로나 시국에 참아왔던 회사 돈으로 놀고 싶어 하는 이사진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어 급하게 추진된 것으로 우리 실 기획행정파트가 담당하였다. 원래 부산으로 호텔, 식사, 레크리에이션 등을 힘들게 예약했다고 들었는데, 다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백실장님이 이사님께 다녀오셨는데, 뭔가 표정이 심상치 않다.

> 우리 이번 워크숍 우리 인재교육센터에서 당일로 하자고 하시네.

부산 가셔서 맛있는 거 드시는걸 한 달 전부터 기대하셨다. 


>그나저나 다음 주부터 4단계인 거 아니야? 그럼 이번 주 주말에 친구들 다 만나자고 해야겠다!!


팝업창이 울렸다. 하사원이었다.

>서현씌 녹음기 켜야 할 것 같은데?


백실장님을 커트할 사람은 없다. 다른 조직들은 과장급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데, 우리는 22명 중에 왜 한 명도 커트하는 사람이 없을까. 다들 뒤에서만 욕하기 바쁘다.


>아 이번 주 주말부터 자제하라고 하네~ 그럼 수도권 말고 외곽으로 나가야겠다~ 다들 참고하세요!

미쳤다. 저런 멘트를 22명의 잠정적 악플러들한테 하는 건 얼마나 생각이 없는 건가. 


>그나저나 오늘 이사님이랑 우리 팀장님들이랑 저녁이 마지막 회식이 되겠네~~ 하하하하하

오늘도 반성한다. 서현아. 실장님이 말할 때 녹음기는 자동으로 키는 습관을 가지자. 


우리 실에서 회식이라는 존재는 민트 초코 같은 것이다. 다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척하는 거.


우리 실에는 백실장, 김 팀장, 이 팀장, 박 팀장 이렇게 네 분이 보직자들이다. 그들은 다 회식을 좋아한다. 다른 말로 하면 회사 돈으로 맛있는 걸 먹는 것을 극도로 좋아한다. 누구랑 먹든 상관없이.


그중 이 팀장이 이 분야 甲이다. 

김 팀장 :  78년생, 여, 기혼, 고등학생 아들 하나, 중학생 아들 하나, 초등학생 딸 하나, 명품러.


김 팀장은 100m 거리에서는 누가 봐도 부잣집 며느리 상이다. 잔뜩 힘 준 파마머리, C사 가방, T사 셔츠, B사 신발. 김 팀장을 볼 때마다 저 돈은 어디서 날까 싶었다. 우리 회사 월급이 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나? 입사 초반에는 정말 신비한 존재였다. 롤모델로 삼을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박 과장님이 이러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다.


어느 날 박 과장님이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 서현 씨. 우리 실에서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김 팀장이야. 

내막은 이러하다.

김 팀장님은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물론 자기 밑에 사람들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직급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김 팀장님의 부하직원이 과도한 업무량과 동료직원과의 마찰로 면담 신청을 한 적 있었다고 한다. 면담에서 김 팀장님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고생이 많다며 위로를 해줬다고 한다. 그 부하직원은 다음 날 업무 재배정을 기대했지만, 김 팀장님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부하직원이 김 팀장님께 참다 참다 혹시 업무는 그대로 가는 거냐고 물어봤을 때, 김 팀장님은 "실장님이 갑자기 업무 바꾸면 좋아하시겠니?"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워킹맘이다. 애 셋을 키우면서 대치동으로 학원을 보내고, 정말 열정적이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유지하냐는 질문에는 "튜터 두면 되지~ 요즘은 그런 거 다 해줘~"라고 대답한다. 난 정말 말 그대로 믿었다.


박 과장님이 말해준 이야기는 정말 달랐다. 김 팀장은 출신, 남편 직업, 애들 학교 심지어 애들 학원까지 그 어느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 돈을 여러 번 횡령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부서 간식 자기 집으로 시키기, 없는 회의 만들어서 법카로 가족 식사하기 같은 작은 것부터 업체 계약 시 웃돈 받기까지 정말 유명하다고 했다.


김 팀장은 아주 악질 중에 악질이지만, 윗사람들한테 아부를 잘하고 비위를 잘 맞춰줘서 지금 여자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김 팀장은 오늘도 회식에 가기 싫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 시국에 무슨 회식이냐며 애들 때문에 나가지도 않는데 회식을 하게 생겼다고 칭얼댔다. 그리고 다른 팀장님들과 실장님은 집에서 고기도 안 사 먹냐며 왜 회식을 좋아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난 또 이 말을 믿었다.


그녀는 민트 초코를 싫어하는 척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날 회식 후기를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김 팀장이 이사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알랑 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러고 이사님께 "이사님~2차 가실 거죠? 저 안 가면 너무 서운해요~"라고 말하며 다른 팀장들을 집에 보내고 이사님, 백 실장과 함께 셋이서 2차를 갔다고 한다. 혹여나 2차에 팀장들 데리고 가면 예쁨을 독차지 못할까 봐 그런 걸까. 


다음날, 그녀는 박 과장에게 "아, 나 어제 2차까지 끌려갔잖아. 너무 힘들어. 커피 없니?" 하며 삥 뜯었다고 한다. 


아, 생각해보니 그녀가 회사에서 개인카드로 뭘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전 01화 #1. 근로소득 월 250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