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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Jul 20. 2021

#4. 인수인계

: 업무 및 물품 등을 넘겨받고 물려주는 것

2021.3.2(화), 오늘은 신입사원들이 첫 출근하는 날이다. 우리 실에도 신입사원이 한 명 배정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케이스로 똑 부러져서 우리 실로 배정을 해줬다고 한다. 난 항상 새로운 사람들은 기대가 된다.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괜히 잘 보이고 싶다. 


> 안녕하십니까?


출근했더니 회의 테이블에 출근하신 분들이 다 둘러싸여 앉아있다. 자리 선택 역시 짬 순이었다. 대리, 사원급들은 멀찍이서 서있었다. 회의 테이블 중심에는 바로 신입사원 윤사원 님이 있었다. 자리에 가는 길에 힐끗 봤는데도 귀티가 흐르고 피부의 탱글탱글함에서 젊음이 느껴졌다. 


아싸. 나 이제 막내 탈출이다! 이제 잡일은 내가 안 해도 되는 건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이번 주는 즐겁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회의테이블 쪽으로 몸을 향했다. 하사원 옆으로 갔다. 

> 몇 살이시래요?

>> 95라는데 그럼 강사원 님보다 두 살 어린 건가?

> 네! 오예, 막내는 탈출이네요~


당분간 타깃은 윤사원이다. 실장님, 팀장님들이 윤사원의 27년 인생을 다 물어볼 것이다. 아마 몇 살 때 한글을 배웠는지, 고등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까지는 오늘 확인할 것이다.


윤사원의 자리는 정대리님의 옆자리로, 내 자리에서 두 개의 복도를 지나야지 만날 수 있는 아주 먼 거리다. 이렇게 먼 거리에 있지만,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괜히 가깝게 느껴진다.


윤사원은 H대학교 통계학과 출신으로 아버지가 연구원으로 일하셔서 어린 시절 미국에서 유학도 했다고 한다. 남자 친구랑은 3년 정도 만나고 있고, 남자 친구는 4살 연상으로 작년에 S사에 입사했다고 한다. 한글을 깨친 시기는 내일 물어볼 셈이다. 


윤사원의 인수 인계자는 정대리이다. 정대리의 일 일부분을 윤사원에게 인계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정대리는 소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실에서는 친절한 편이다.


그 날이후 나는 노골적으로 윤사원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또래라는 이유로 가까워졌다. 윤사원은 알고 보니 욕심도 많고, 자기주장도 뚜렷한 멋진 여성이었다. 옆에 있으면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았다. 박 과장님도 너무 좋으시지만, 가끔 세대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윤사원이랑은 그런 게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보다는 더 편안한 것 같았다. 


어느새 한 달 반이 지났다. 윤사원은 적응을 잘 해가는 것 같았다. 아직 일은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실 사람들과 누구보다 잘 지냈다. 난 그런 윤사원의 열정적임이 부러웠다.


> 서현님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윤사원은 날 서현님이라고 부른다. 서현 씨는 어색하다나 뭐라나. 귀엽다.

>> 없어요. 오~ 점심 먹을까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 아 전 상관없어요~ 앞에 쌀 국숫집 가실래요?

>> 네~ 좋아요


윤사원이 이렇게 나한테 점심을 먹자고 한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 서현님~ 1층에서 만나요~

그녀는 치밀했다. 같이 먹는 걸 들키기 싫은 눈치였다. 하긴 같이 먹은 거 들키면 뭘 먹었냐부터 시작해서 왜 따로 먹냐고 여기저기서 물어볼 것이다.


회사 밖에서 만난 윤사원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얼굴만 봐도 힘들어 보였다. 그동안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 혹시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요?

>> 아~ 그게.. 일단 뭐 드실래요? 전 양지 쌀국수요~

> 전 팟타이 먹을게요~


윤사원이 물을 따라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 혹시... 정대리님은 어떤 분이에요?


고민했다. 무슨 답을 원하는 걸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 음.. 저는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친절하시지 않아요?

> 친절하시긴 한데.. 사실 저 지금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 아~ 원래 입사 초반에는 그렇기도 해요~ 그때를 즐겨요~

>> 그런 수준이 아니고, 그냥 일은 아예 안 넘기려고 하세요. 팀장님이 정대리님 업무분장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정해졌거든요. 입사한 첫날에. 근데, 그 이후에 일을 안 넘겨주세요. 

전 아무것도 모르니까 알려달라고 하면, 파일 하나를 보내주세요. 그럼 주신 파일 보면서 혼자 공부하고 그러다가 또 모르는 게 생겨서 여쭤보면, 또 다른 파일 하나를 보내주세요. 

이런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렇게 물어보기도 뭐하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폴더를 달라고 했더니, 말끝을 흐리면서 답을 안 하시더라고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내가 평소에 알던 정대리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었다. 일에 욕심이 조금 많아 보이긴 했지만, 적당한 정도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남들에게 피해줄 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임자가 자료만 주고 설명도 제대로 안 하고 잠수를 탔다는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자료를 안 주려고 하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 아... 정말 그런 줄 몰랐어요. 팀장님한테 말씀드려봤어요?

윤사원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 네. 말씀드리고 삼자대면도 했어요. 그 이후에 좀 알려주나 싶었는데 이제는 정말 너무 정 떨어져요.


알고 보니, 삼자대면 때 김 팀장이 박 대리한테 노골적으로 폴더를 넘겨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사원이 폴더를 받았는데, 뭔가 너무 폴더에 파일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본인이 봐도 참고 파일 정도만 넘겨준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윤사원 업무와 관련된 메일들을 전달해줬는데, 그 메일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 원래 메일이 답장을 하면 그전에 사람이 보낸 것까지 같이 보내지잖아요? 그럼 그 상대방의 인적사항, 뭐 소속이나, 메일 주소, 전화번호도 남겨져 있고! 근데 정대리님이 전달해준 메일은 인적사항 다 지워져 있고, 파일도 없고 그냥 나눈 대화만 있어요 근데 인적사항란이 지워져 있어서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인적사항은 메일을 보낼 때 자동으로 메일 하단에 생성되는 것으로 우리 회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회사 메일에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인적사항이 안 적혀있는 메일은 개인 메일을 사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이건 메일을 전달할 때, 그냥 그 메일 위에 있는 "전달" 칸을 바로 누르지 않고, 이것저것 수정을 하고 보낸 것이 틀림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휴지를 건네주고, 들어주고, 밥을 사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난 나 자신이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고 우리 실 사람들은 다 꿰차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날의 점심이 윤사원과 함께한 마지막 점심이었다. 일주일 후 윤사원은 사표를 냈고, 그 이후 볼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에 윤사원의 퇴사를 둘러싼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더 좋은 곳에 합격해서 퇴사하는 거다, 어려서 다른 회사 사람 들고 어울리지 못했다, 성격이 좀 유별났다 등. 말도 안 되는 가십들이 넘쳐났다. 


정대리는 윤사원의 퇴사에 대해 본인이 일을 혼자 해야 한다며 야근이 잦아지겠다고 힘든 내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윤사원이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정대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난 다시 

막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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