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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Jul 20. 2021

#1. 근로소득 월 250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


오늘도 박 팀장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났다가 사무실을 한번 쓱 훑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우물쭈물 대다가 자리에 앉는다. 박팀장이 빼빼 마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는 팀에서 일어나는 모은 일에 관심이 있다. a.k.a. 오지라퍼


박팀장 : 79년생, 남, 기혼, 초등학생 아들, 고양이 두 마리, 친구는 한 명도 없어 보임.


난 오늘도 출근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는 건 너무 힘들지만 난 왜 또 내 자리에 앉아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주린이들이라면 지금 당장 봐야 하는 것”이라는 유튜브에서 근로소득은 보장이 되어야지 주식투자며 투자라는 걸 할 수 있다는 말에 난 퇴사를 하지 못한다. 


돈. 도대체 언제까지 벌어야 하는 걸까. 내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월 250이 더 가치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열두 번은 고민한다. 아버지는 대략 40년 동안 일하시는 것 같은데. 존경합니다. 오늘 카톡이라도 하나 보내야겠다.

이럴 때는 지현과장님 찬스가 필요하다. 


박지현 과장 : 84년생, 여, 기혼, 초등학생 딸, 강아지 한 마리, 나랑 제일 친함. 

메신저를 켰다. 왜 이 스카이프는 키려고 사적인 대화를 하려고 하면 에러가 생기는 걸까. Ctrl+Alt+Del. 껐다가 다시 켰다.  우리 실은 22명으로 다른 실보다는 인원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은 것일까.

>지현과장님~~
>>웅웅! 안뇽~
>과장님 저 오늘도 출근하기 너무 싫었잖아요. ㅂ은 아침부터 또 왜 이렇게 벌떡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눈 마주치기 싫은데… 

ㅂ은 박팀장을 지칭하는 우리들의 약어로 혹시나 이 망할 놈의 스카이프가 유출되었을 때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니까. 난 심지어 코앞이잖아ㅠㅠ 아직 10시도 안됐네
>네. 그러니까요. 과장님 우리가 이 근로소득을 위해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회사에 다니는 게 맞는 선택일까요 이렇게 하루하루 짜증만 나고 보람찬 일 하나 없는데? 오늘도 일하다 보면 어느샌가 하루가 다 가있을 텐데..
>>너 나이 때는 그런데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나중에 결혼해봐. 집에만 있으면 애도 놀아달라고 하고 강아지도 놀아달라고 하고 얼마나 지긋지긋한 줄 아니.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나아. 그래도 저 사람들은 무시할 수라도 있잖아.
>아 그러네요. 오늘 로또 좀 사볼게요. 저 아무래도 부자가 돼야 할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출근을 안 하면, 좋은 소식 있는 줄 알고 보내주세요.
>>오늘 밤부터 기도할게.


그래도 과장님이랑 대화를 하니 스트레스가 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한다. 역시 출근 후 메신저 욕은 진리지.

박팀장이 신났다. 큰일이다. 박팀장이랑 김사원은 영혼의 단짝. 소울메이트인 것 같다. 김사원은 박팀장을 싫어하지만(친구도 없고, 연줄도 없고, 잘 보여봤자 힘도 없으니) 그래도 둘이 저렇게 대화를 장시간 하는 걸 보면 영혼의 단짝인 게 확실하다.


회의실은 왜 회의실인지 저 사람들은 아는 걸까. 회의실이 우리 실 바로 앞에 3m 거리에 있다는 걸 말해줘야 할까. 그들의 대화에 머리가 아프다. 왜 우리는 눈은 감을 수 있고, 숨도 참을 수 있는데 귀는 막을 수 없는 걸까. 난 가끔 하사원이 부럽다.


하사원은 입사 5년 차인데, 경력도 있어서 회사생활 만렙이다. 심지어 그는 선별해서 듣는 능력이 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열중을 하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말이 들리면, 귀를 닫는다. 정말 듣지 않는다. 

맨날 내가 하사원님 들었어요?라고 하면 뒤늦게? 뭐요? 무슨 말이요? 이러신다.


박팀장과 김사원이 하는 얘기 왜 내 귀에는 쏙쏙 박히는 걸까. 그들은 오늘 갑자기 재무실 사람들의 일처리에 대해 비난하며 그들은 왜 그리 멍청하냐고 열띤 토론을 한다. 그것도 22명이 있는 우리 실에서 둘이 일어나서. 왜 일처리를 저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박팀장은 재무실이 멍청하다고 한다.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재무실 좀 가라. 자기 멋에 살고 자기 멋에 죽는 사람이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난 걸까 3년이나 봤지만,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강사원!
갑자기 박팀장이 저 대화에 날 끌어들인다.
>강사원 회계사 공부하지 않았었나? 
>>네?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 회계사 공부 말이야.
>>네.
말꼬리를 내린다는 건 대화 종결이라는 뜻이라는 건 알길 바란다. 제발!
>아니 회계사 공부했다는 애들은 다 왜 그래? 어느 정도 머리가 있으니까 회계사 시험도 공부하고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안 그래 강사원? 강사원 1차는 합격했다고 했나?
>> 전 하다가 말았습니다.
>아 맞다. 회계사 준비했다길래 면접 때는 재무 지식에 빠삭한 줄 알았어. 우리는 그래서 강사원 뽑은 거야.

 
이젠 진짜 대답할 가치가 없다. 누가 나 뽑아달라고 했니?
오늘도 다짐한다. 서현아 녹음! 요즘 휴대전화 녹음도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녹음 좀 켜놓자!
인권보장실에 언젠가 찾아갈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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