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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들의 방(11)

by Josephine

4. 중년 아버지의 고독사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주인아주머니는 정신이 없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죽었다고요. 제가 그 현장을 발견했어요. 얼마나 끔찍하던지... 시신이 너무 많이 부패되어 있어서... 여기 혈흔과 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현장 청소가 시급한데, 빨리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빌라 주인이 사무실에 전화한 다음날 민식과 우진, 현우는 건물에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다가서자, 이미 시취가 진동했다. 현관문 틈으로 기어 나온 벌레들도 보였다.

민식이 고개를 절레거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이거, 들어가기 전부터 상황이 어떨지 예상이 되는데... 힘내서 잘해보자!"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방독면 사이로 심한 악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식과 우진, 현우는 시신이 있었다고 들은 큰방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방문을 여니, 역시 상황은 심각했다. 방 안 전체엔 시신에서 흘러나온 혈흔과 체액들이 넓게 펴져 있었고, 바닥엔 우글거리는 벌레들로 가득했다.


민식은 우진과 현우를 보며 다짐한 듯 말했다.

"서두르자!!!"

그들은 급히 집안 전체를 소독했고, 오염된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집안 곳곳엔 여러 약봉지와 많은 소주병이 보였다. 민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족들은 모두 미국에 있다고 주인분께 들었는데, 아버님이 많이 외로우셨나 보네. 지병이 있는데도 술을 드시면서 많이 외로움을 달래신 것 같아... 쯧쯧"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어느새 빌라 주인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방에 들어왔다.

"수고가 많으세요. 현재 세입자의 아내와 딸이 한국으로 오는 게 늦어지고 있나 봐요.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뜨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에휴... 아빠가 딸 유학시키려고, 본인 아파트 팔아 빌라 전세로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이런 일이... 평소에 심혈관 쪽이 안 좋았는데, 아무래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게 아닌가 싶어요."

주인의 말이 끝나자, 민식이 바로 이어 말했다.

"어쩐지... 집안에 약봉지가 수두룩 하더라고요"

주인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족들끼리 행복하게 잘 살자고 기러기 아빠를 자청했을 건데... 어째 이런 일이... 아직도 시신을 발견한 그날만 생각하면... 어쨌든 청소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인사를 남기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민식은 아주머니 얘기를 들으며, 가정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가장들의 삶이 떠올랐다.

"휴..."

그는 긴 한숨을 쉬고, 큰 방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다가갔다. 그곳에서 작은 메모를 발견하였다.


'혼자 너무 외롭다. 외롭다. 특히 고요함이 지독하게 찾아오는 밤이면 더욱 외롭다. 가만히 있어도 그 외로움이 날 삼켜버릴 것만 같다. 게다가 몸이 힘들어 더 이상 딸아이에게 유학비를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살고 싶은 의지를 꺾는 것 같다. 더 이상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 몸은 점점 아파오고... 가족들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내가 만약에 갑자기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겠지. 그것마저도 날 외로움에 사무치게 한다. 내가 만약 갑자기 죽게 된다면... 얼마 만에 발견될까... 아마 며칠, 아니 몇 개월이고... 아무도 모르겠지... 가족들과 그저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나에겐 사치인가 보다... 오늘따라 너무 외롭다.

심장 쪽이 계속 쪼여온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염려에 사로잡혀, 이렇게 혹시나 모를 메모를 남겨둔다. 딸아이의 유학비와 생활비를 보내고서,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다가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다. 작은 방 책상 서랍에 현금을 모아 놓았다. 혹시 올해 방학 때 딸아이를 보게 된다면 주려고, 예쁜 새 옷도 마련해 놨다. 작은 방 옷장에 넣어두었다. 그 옷을 입고 환하게 웃을 딸아이를 생각하면 이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밤이다....'


민식은 아버님의 메모를 보자, 울컥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매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바로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 아버님,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그 곳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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