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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자들의 방(13)

by Josephine

5. 원치않는 이별




민식은 침대 위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그녀의 눈은 붉그스레 부어 있었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너무나도 애틋했다. 그녀 옆에 있는 남자는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민식은 사진을 한참 바라다보다가, 무심코 사진 뒷면을 보았다. 사진 뒷면에는 '우리 아가, 하윤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 적혀 있었다. 하단에는 아이가 태어났던 날로 추정되는 날짜와 함께 "대한 보육원'이라 적혀 있었다.


민식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아이를....'






수현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복을 입은 채 급히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그녀는 국어 수업 시간에 나온 작가의 책을 빌려보기 위해 헐레벌떡 도서관 입구로 뛰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은 오롯이 그 작가의 책을 찾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책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조급한 마음으로 책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 어디 근처에 있을 건데..."

영롱한 눈빛으로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드디어 그녀가 보고 싶어 하던 작가의 책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그때 옆에서 한 남학생이 수현이 바라보던 그 책을 갑자기 꺼내 들었다.


순간 수현과 남학생의 눈이 몇 초간 마주쳤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수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남학생에게 말했다.

"... 저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책을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아... 괜찮아요. 먼저 보세요. 저는 나중에 봐도 돼요."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작가분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태윤은 살짝 부끄러운 듯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가분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문체를 좋아해요"


수현과 태윤은 좋아하는 작가의 얘기를 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은 방과 후에 많은 대화와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었다. 수현은 유복한 집안에 자라 부모가 향상 정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 그녀는 대신 태윤에게 기대었다. 태윤은 생계로 항상 바쁘신 부모님 밑에서 외롭게 자랐다. 그는 수현과 함께 있으면 자신의 삶이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그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수현과 태윤이 스무 살 끝무렵이 되던 어느 겨울날...

수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태윤아... 나 임신했어...."

순간 태윤의 얼굴은 당황스러움과 기쁨, 그 사이를 오고 갔다. 태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나... 너랑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

둘은 서로의 믿음 가운데,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 그 약속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현의 부모님 반대가 너무나도 거셌다.

"넌 우리 가문의 수치야! 그 사내새끼랑 아이 모두 네 인생에서 잊고 새 출발해! 안 그러면 이 집에서 나가!"


수현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간곡하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했지만,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하자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찬 바람이 불던 어느 밤, 수현은 한 보육원 앞에 서있었다. 칼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휘날렸고, 그녀의 눈물도 함께 흩날렸다. 그녀의 품 안에 있는 갓난아이는 '쎄근'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었다. 수현은 한참을 아이를 바라보며 서럽게 통곡했다. 그녀는 아이를 바스러지도록 꼭 껴안았다.


"우리 아가, 하윤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언젠가 엄마가 꼭 찾으러 올게.... 정말 미안해."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는 한겨울의 칼바람과 함께 공기 중으로 점차 흩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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