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자취방

물감과 돌

by 도겸

월요일 아침 일찍 학교로 올라간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나오셨어요??"

빨간 자판기에서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고 과사무실로 올라왔다.

"어, 학장. 교수님 아직. 보라한테 얘기 들었어. 충주 생각한다고? 그럼 효선이 때문에 거기 생각한 거야?"

"아. 아직 결정된 거는 없습니다. 학과장님 의견 좀 들어보고.. 학회에서 애들 의견도 좀 들어 보려고요."

"음.. 그래. 너무 힘들게 진행하지는 마."

"네"

월요일은 오전 수업이 없다. 보통은 수업이 없을 때 밀린 작업을 하지만 오늘은 하기가 싫다.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학과장님도 안 계시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음대 건물에 가 있어야겠다.


음대 건물은 우리 건물 옆에 있다. 음대 건물은 우리 건물 보다 더 초록초록 하다. 그리고 빨간 벽돌로 되어 있는 오래된 건물이다. 그래서 겨울에 눈이 오면 이 음대 건물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저절로 난다.

건물이 참… 예쁘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첼로 소리가 가끔 들린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더라.


"어? 미장?"

음장 누나다. 음대학장


"아. 안녕하세요."

"누구 만나러 왔어요?"

"아, 아뇨.. 그냥. 지나가다가..."

"뭐야 싱겁긴... 미술과 신입들은 어때요?"

한 명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네. 뭐.. 똑같죠.. 음대는요?"

"우리도 뭐. ㅎ 그 체장이랑 같이 얘기해서 예체능 만나? 어떡할래요??"

"형한테 제가 연락해 볼게요."


우리 예체능 단과대는 음대, 미대, 체대 모두 사이가 좋다. 뭔지 모를.. 실기를 한다는 동질감이 있는데, 서로 전혀 다른 영역이라 서로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이 많다.

음장 누나를 처음 본건 작년이다. 작년 우리 학장형 여자친구다. 지금도.


"그래.

재훈이는 잘 있어??"

정재훈. 작년 학장형이다. 누나의 남자 친구.

"예??ㅎㅎ 누나가 더 잘 알죠."

"얼굴 본 지 백만 년. 뭐 혼자 졸업해???"

"저도 잘 못 봐요. ㅎ. 그럼 말 나온 김에 형이나 보러 가봐야겠어요."

"보면 나 좀 보러 오라 해.ㅋ"


다시 미대 건물로 와 1층 복도 끝에 있는 4학년 실에 노크를 하고 문을 끼익 연다.

"어? 오빠. 여긴 뭔 일이여"

4학년 여학생들은 다 나보다 학번은 밑이다."

"어.. 안녕. 재훈이 형은?"

"몰라? 목재실에 있지 않을까??"

"어. 땡큐."

형은 나무를 즐긴다. 가구를 만든다. 석조실은 나, 철조실은 원희, 목재실은 재훈이 형 담당이다. 우리는 조각과 3대 천왕이다.

위~~~~ 잉~~~~ 석조실보다는 작고 귀여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형!"

"어. 왔어? 나가자."


형은 진짜 잘생겼다. 작업복 벗으면 진짜 모델 같다. 얼굴로 학장 한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홍대 앞에서 학원을 다녔었는데 유명했다고 한다. 내가 1학년때 술자리에 끝까지 있었다고 나 학년 대표 시킨 형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형 때문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형은 롹음악을 좋아한다.

"야. 신입 너 음악 좋아하냐?"

"네. 저 메탈리카랑 마릴린 맨슨 좋아합니다."

"뭐?! 그럼 건즈는?"

"말해 뭐 합니까. 접니다. 노멤버 뤠인.."

"이 새끼... 너 오늘 나랑 놀아."

형이랑 음악 얘기 하다가 끝까지 남은 것뿐이었다.


"어. 학장 얘기 들었다. 효선이 얘기."

"아, 예.. 그렇게 됐어요.."

"그 1학년이 대신한다는 얘기도 들었어. 잘했어. 진짜 잘한 거 같다. 잘하면 장땡이지 뭔 학년 따지고 지랄이여"

형은 그런 틀에 박인, 납득 안 되는 규칙을 싫어한다. 그래서 조각과 인데 가구를 만든다. 형의 작업 마인드는 '손으로 만드는 모든 것은 조각이다'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음장 누나 주려고 만드는 거 같다.

"학과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에요.. 학과장님 생각이에요"

"아.. 드루와 드루와... 역시!!!"

"형. 근데.. 다른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넌 어떤데?"

나는 좋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저는 애들 의견 따르는 거죠."

"야. 네가 의견을 내고 애들이 따라오게 해야지. 안되면 대화하고, 조율하고, 설득하고. 그런 거 하라고 너 시킨 거지, 안 그럼 학장을 왜 뽑냐. 각자 알아서 하지. 그게 정치지."

형은 나에게 학장을 넘기면서 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무리 학교라는 작은 단체라도 정치는 존재하며 정치하듯이 하라고 일렀다.

솔직히 아직까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는 그 상아가 하면 좋죠. 아무래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리고 학과장님 말대로 사회경험도 있어서 일 처리도 잘하고 같고.."

"그래. 그런 의견,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나도 지금 설득된다. 너 알지. 작년에 너 총무 시키느라 조 파장이랑 싸웠던 거."

"예"

"내가 어떻게 이겼게? 조 파장한테 그랬어. '그럼, 못하고 하기 싫어하는 3학년 시킬까? 잘하는 2학년 시킬까?' 그 새끼 한마디도 못하더라. 잘하면 그만이야. 잘하라고 뽑는 거고. 잘 하니까 뽑는 거야. 알았지?"

"옙"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날 항상 감싸주고, 응원해 준다.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자기에게 연락 안 한 원희에게 진짜 많이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물론 형은 원희도 좋아한다.


"형. 그리고 엠티요.."

"엠티? 어 왜. 잘 안돼?"

"아 아니에요. 학회 할 때 얘기 해 드릴게요."

"학회 해? 그래, 그럼."

"그리고 형."

"아 뭐. 또 뭐. 왜. 뭐 술이라도 사 와? 할 얘기 많아??"

"아 아니.. 음장 누나가 자기 보러 오래요. 백만 년 됐다고.ㅎ"

"아~ 서프라이즈하기 힘들다... 야. 연애하지 마라."

이럴 줄 알았다. 누나 주려고 또 뭐 만드나 보다.


띠리 리리~ 조교선생님이다.

"학장아. 학과장님 호출. 오셨다"

"아. 넵. 형 저 갈게요."



똑똑똑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 앉아. 조교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다. 계획이 뭐야?"

"엠티를 충주로 가는 안건이 나왔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효선이 부모님 일도 도와 드릴 겸.. 그래서 교수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학장아. 잘 들어라. 좀 멋지긴 해. 나 옛날에 농활 갔던 생각도 나고. 그런데 말이야. 애들이랑 잘 이야기해봐. 우리가 봉사를 하러 가는 건지. 멤버십 트레이닝 하러 는 건지. 봉사 라면, 봉사 라는 건 상대방에 좋아야 봉사야. 상대방이 필요해야 봉사야. 상대방이 고마워해야 봉사야. 아니면 방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효선이의 생각이야. 나는 너네 응원해. 내 학생들이니까. 효선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우리 학생들 때문에 우리 효선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의견이고, 학회 한다며. 애들이랑 더 이야기해봐. 이상 끝."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데, 교수님이 큰 소리로 말한다. 나 들으라는 듯이.


"야 조교야.!! 이따가 효선이 휴학서 사인 받으러 온다고???!!!! 몇 시에??!!!!"


띠링.

-오빠 어디?-

-나 학교.-


띠링

-나도 학교. 그림 학사에서 만나요~-


학사에 가니 보라랑 예리랑 희경이가 벌써 와있다.

"상아 언니는 지금 오고 있데요. 원희 오.."

"원희는 없어도 돼."


"안녕하세요~"

그녀가 왔다. 오늘도 눈으로 향기가 느껴진다. 아. 정신 차리자.


보라가 먼저 입을 연다.

"나부터 이야기할게. 조 파장이랑 서파장이 알아 봐줘서 봤더니 이번 주 수요일 오후에 3학년 서파만 빼고 학년이 다 수업이 있어서 수요일 오후 5시부터 30분 잡았고, 이따 학과에 보고 할 거야. 그리고 학회 빠지는 애들은 투표권만 받기로 한다고 연락 이따 할 거고... 아. 3학년 서파 애들은 내가 어제 다 오라고 얘기해 놨고."


역시 보라다. 내가 없어도 우리 과는 잘 돌아갈 것이다.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어... 60명 기준으로 하면 45인승 버스가 애매해서 90명 기준으로 알아봤어요. 2대이고요, 왕복으로 합니다. 기차는 인원 변동에 따라 금액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인원 확정 해야 할 거 같아요. 숙박은... 리조트 한 군데 알아봤는데... 사과농장이 어디인지 몰라서.. 다른 곳은 못 알아봤어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언니. 죄송할 거 없어요.ㅎㅎㅎ"


"조파는, 학년 대표들이랑만 살짝 이야기해 봤는데.. 다들 좋다는데요??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하겠대요."

서파 신입 환영 할 때 서둘러 나갔던 일이 괜히 미안해진다...


"서파는 아무래도 아직은 좀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서... 확실한 의견은 아직 없어요."


우리 임원들 다들 너무 고맙다. 주말에 원희랑 제창이형이랑 술 먹고 누워있던 내가 한심해진다.


"그래. 수고했어, 고마워 다들. 지금 학과장님이랑 이야기하고 내려오는 길이야. 학과장님도 좋다셔. 그런데. 효선이 의견이 중요할 거 같다고 하신다. 교수님 말이 맞는 거 같아. 우리가 원한다고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맞네... 그러네..." 예리와 희경이가 호응을 한다..


"이따 오후에 효선이가 휴학서 도장받으러 오나 봐."

"네 온다 했어요. 저한테."

보라다.


"그때 내가 효선이 한테 물어볼게."

"같이 있을까요? 제가?"

보라다.


"아냐. 내가 조용히 얘기해볼게. 고마워."




오후 전공 수업이 끝났다. 오후 수업은 항상 즐겁다. 이 수업만 끝나면 집에 갈 수 있다.

띠링

-오빠 저 학사요..-

효선이다.

-응. 바로 갈게.-


학사 문을 여니 효선이만 앉아 있다. 얼굴이 조금 안정 돼 보인다.

"주말엔 잘 다녀왔어?? 엄만 좀 어떠셔?"

"다행히.. 좀 괜찮아지셨어요. 근데 아직 몸은 잘 못 움직이겠나 봐요."

"음.. 그래. 잘 보살펴 드려.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 충주,, 2시간 이면 가나??"

"ㅎㅎ 오빠 참... 진짜 민원해결 해 주는 시청 사람 같아."

"뭐래... ㅎ 그.. 다른 건 아니고. "

"보라랑 예리한테 대충 이야기 들었어요. 오빠가 이런 이야기할 거라고. 모르겠어요. 제가 농장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엄마도 농장에 안 계시는데...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고.."

그렇다. 효선이 어머님의 생각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세상 쉬운 일 정말 없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빠.. 엄마한테 물어보고 답 드리면 안 돼요??"

"어, 당연히 그래야지. 엄마랑 천천히 이야기해.. 급할 거 하나도 없어."

"네, 고마워요.. 오빠. 그리고 상아 언니가 총무.. 한다면서요? 다행이에요. 죽 쒀서 개 주는 줄까 봐 걱정했는데.. ㅎㅎ 그 언니 서파에서 은근 인기 많아요."

"어 그래.. 고마워."


그녀가 학교 생활 잘 적응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리포트 도와줄 사람이 나 말고 더 생겼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나저나 수요일 오후 전에 효선이가 답을 해 줘야 할 텐데....


오늘은 조금 쉬고 싶다. 이미 해는 음대 뒤로 넘어 가려하고 있다. 조용히 집에서 책이나 보고 싶다.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간다. 도서관 앞을 지날 무렵..


“어? 오빠 안녕하세요”

누구지??

“저.. 상아언니.. 국문..”

“아!! 안녕하세요.”

“아 맞구나.. ㅎ 어디 가세요??”

“아.. 저 집… 끝나서..”

“저는 지금 상아 언니한테 가는데! 언니 만나서 밥 먹으러 가려고요. 이리로 쭈욱 가면 미대 맞죠??”

“아.. 네.”

”!! 오빠 같이 가실래요?? 언니랑 같이?? “

“예?? 어디를요??”

“밥 먹으러요. 언니 지금 나오고 있을 거예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그냥 학교에 계속 있을 걸 그랬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국문과 동생인 소리를 지른다.


“어?! 언니~~~”

빛이 나는 무언가가 손을 흔들며 이리로 달려온다.


“어?! 학장?”

“언니 오빠도 같이 가겠데. 괜찮지?”

난 그런 적 없다. 없는 것 같다.


“학장 시간 돼요? 그럼 나야 좋지.”

그녀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한다.


“언니 우리 과 학장이 그러는데 여기 닭갈비 진짜 맛있데. 언니 닭갈비 좋아하잖아. 오빠 닭갈비 좋아해요? “

“저는 뭐.. “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야. 아무거나파야”

그녀와 동생은 깔깔깔 거리며 2층 계단으로 올라간다.


동생은 닭갈비 3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저 오빠, 우동사리? 볶음밥?”

“야 아무거나. ㅋㅋㅋ”

주전자가 생각이나 머쓱하다.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여학생이 우리 닭갈비를 볶아 주는 동안 동생이 다시 조잘 거린다.

“오빠는 우리 상아 언니 궁금한 거 없어요?”


많다. 정말 많다. 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 입시 어디서 했어요?”


참... 질문.. 하고는….


“언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네… 언니 말이 맞네.. 아무것도 모르네… 언니랑 저랑 춘천에서 왔어요. 언니 춘천에서 미술학원 다녔어요. 오빠 그거 알아요? 언니 그림 대박 잘 그려요.”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상아 언니 닭갈비 좋아하고요, 책 좋아하고요, 그림 좋아하고요, 영화배우 조승우 좋아하고요, 또…. “

“야아~~!!!! 그만!!!!”

고마워요 동생.


동생은 그녀보다도 말이 많았다. 나는 양배추와 소주만 홀짝 거렸다. 그녀의 동생은 이제 20살. 아기 같다. 종알종알. 그 옆에 있는 그녀를 보니 어른 여자처럼 보인다.


빨라라라~~ “여보세요~~”

그녀의 동생이 전화를 받는다.

“어~~~ 갈게~~~ 어~~~~, 언니 나 간다. 오빠 언니 좀 부탁해요!! 안녕히 계세요! 아 가세요?? 계세요??ㅋ 그럼. “

그녀의 동생이 맞다.


“왜 갑자기 가요?”

“동생 오늘 과동아리 모임 있는데.. 가면 나 혼자 밥 먹는다고 같이 밥만 먹어 준 거예요. 때마침 학장이 나타나고..”


와… 정말 아직도 세상을 날 중심에 두고 돌고 있나 보다.

우리는 볶음밥과 소주 한 병만 야무지게 먹고 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그리고 사거리,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학장. 그럼 가. 내일 봐.”


나도 모르게,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내 방.. 구경해 볼래?”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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