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돌
“그래도 돼?? 정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1층 내 방문을 열자 그녀의 큰 눈이 더 커지는 것만 같다.
“와…, 진짜 깨끗하다… 학장. 이런 사람이야??”
군대 있을 때 생긴 버릇이다. 깨끗. 정리. 더군다나 나는 승용 세단과 야전 지프차를 두대를 항상 닦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운전병 출신이다.
“와…. 이건… 학장 책 엄청 많네?? 책 좋아하나 봐??”
군에 있을 당시 지휘관 운전병이었기 때문에 대기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군대 밖을 나가도 항상 대기였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 밖에 없었다. 우리 부대 행정보급관님 덕분에 도서관에는 책이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책 읽는 것이 반 강제로 할 수밖에 없는 취미였다.
“어? 이거 나도 알아.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그녀가 가리킨다.
“학장 멋있다…”
“아냐… 그냥 제목이 멋있어서..”
도킨스 씨. 신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은 지금 제 편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내 유일한 안식처인 회전의자에 앉는다.
나는 그냥 바닥에 앉았다. 앉아서 둘러 본 내방은 참 작았다. 새삼 느낀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뭐 마실 거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공기만 마셔??”
“아. 미안.”
작디 작은 냉장고에서 원희가 사다 놓은 캔 콜라를 하나 건네준다.
“ 남자 자취방이라는데 처음 와바. 신기해.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은 더럽 덴데.. 학장은 깨끗하다.”
“아니야.. 남자들 다 이래.”
“근데 학장은 왜 자취해?? 서울이 집이라며.”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데, 그녀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그녀에게 엄마, 아빠, 원희, 제창이형 이야기를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마음이..
편안 해진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맞나 봐… 학장이나 나나… 그렇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띠리리릴~ 그녀의 전화가 울린다.
“언니 집에 가고 있어?? 잘 가고는 있어?”. 그녀의 동생 목소리가 작은 내 방을 울린다.
“어 가고 있어. 늦게 오지 마. 나 무서워.”
“학장 나 갈게. 잘 자. 내일 봐.”
“어 잘 가. 요.”
닫힌 문 앞에 서 있다. 아직도 그녀의 신발이 있는 것 같고, 아직도 그녀의 향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방.. 환기 좀 해야겠다.
오늘은 수업이 full이다. 너무 싫다. 특히 교양 수업. 듣고 쓰고 외우고…
이수 학점을 맞춰야 하기때문에 억지로 들었던 사회학 교양 오전 수업을 마치고 우리 미대 건물로 올라간다.
띠리리리~
어? 효선이 전화다.
“오빠~!!!!! 엄마가!! 와서 신나게 놀다 가래!! 괜찮데!! 더 대박 뭔지 알아???”
“어?? 뭔데??”
“보라한테 물어봐. ㅋㅋㅋ ”
“아 뭔데. 뭐야.”
“오빠… 고마워요. 끊는다~~”
다행이다. 효선스러워서.
학교에 도착하니 원희랑 보라가 빨간 자판기 앞에서 날 기다렸다는 듯이 처다 보고 있다..
“뭐야. 보라야. 효선이가 뭐래?”
“오빠 잘 들어.”
원희가 씩 웃는다.
“효선이 엄마가 얼마든지 오래. 그런데 농장 일 할 거는 없데. 그런데 효선이 엄마가 마을 운영회에 이야기를 하니까 마을 분들이 잘 됐다고, 젊은이들이 도와줄 일 있다고, 밥 줄 테니까 오라고 하셨데.”
보라의 웃음. 오랜만이다.
“학장. 답사 준비 해야겠다.”
원희도 웃는다.
하루 만에.. 아니 하루도 안된 거 같은데…
“다행이다. 그럼 보라야 이따 끝나고 임원들 좀 모이자. 학회 준비 하자.”
“응 학. 짱.”
조교선생님과 학과장님께 보고를 드리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하고 결과만 보고 하라 하신다.
수요일. 오전 미술비평 수업. 그녀는 여전히 보라와 같이 앉아있다. 오후 창규교수님 수업 후 옷을 갈아입고 우리 과 대강의실로 올라간다.
학생회장의 명찰로 회의 진행 하러 올라간다. 그전에 조교 썜에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
“선생님 회의 진행 하겠습니다.”
회의를 하는 동안은 모든 파트가 올스톱이기 때문에 혹시 모를 모든 업무는 조교선생님 혼자서 해야 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절차일 뿐이다.
“나도 회의 갈까?”
“오시면 감사하죠.”
“됐어! ㅋ”
대강의 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모두들 이미 와 있다. 4학년들도 저 뒤에 서 있다. 1,2, 3학년은 4학년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4학년은 1,2, 3학년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이것이 우리 과 첫 번째 규칙이다. 저 끝. 제훈이 형이 기대하겠다는 의미의 미소를 보낸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 과 학우 여러분들. 작업복 벗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한번 쏘든가.”
누군지 모를 말에 모두들 웃는다. 남자 목소리.. 기억해 둘게.
“아 네. 뭐.. 고민해 보겠습니다... 다들 소식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총무 전효선 학우가 사정으로 휴학을 하게 되었고, 1학년 차상아 학우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워주기로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반대의 목소리가 없어서 학우 여러분들께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학회의 안건은 엠티입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멤버십 트레이닝이 아닌 봉사 활동을 목적으로 하려 합니다. 장소는.. 휴학을 하게 된 서파 3학년 전효선 학우의 고향, 충주로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각 파트장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설명은 전달 됐으리라는 긍정적 생각을 하겠습니다. 어디서라는 계획만 잡혀 있을 뿐 다른 세부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기획에 대한 고민을 임원들이 고생하며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된 것은 없습니다. 학우분들의 과반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그때부터 답사를 시작하고 기획하려 합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의견 모두 받겠습니다.”
“언제 가요?”
첫 질문이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은 중간고사 끝나고나, 기말고사 끝나고 종강 전입니다. 빠르면 5월 다음 달, 늦으면 7월입니다. 투표용지에 날짜에 대한 기입을 해 두었습니다. “
“가면 뭐 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르겠습니다. 효선.. 그 충주 마을회 운영 어르신들을 만나 뵈어야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가요?”
“진행이 된다면 항상 해 왔듯이 2박 3일입니다. 주말 끼고…. 수업에 최대한 방해 안 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주말에 대한 부담이 있으신 분들은 참석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수업의 연장으로 진행하려 하지 않으려는 저희 임원들의 생각입니다. 조교 선생님과 학과장님께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만 엠티에서 써야 하는 금액이 이미 산정되어 있기 때문에 못 오시는 분들에 대한 금액은 오시는 분들에게 혜택이 가는 쪽으로 예산 편성을 할 것이고, 최대한 많이 남겨 못 오신 학우분들께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 보겠습니다.”
“주말 말고, 그냥 가면 안 돼요? 아, 수업 빼고 싶은데..”
크크크크
작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나도.. 그러고 싶다.
“과 목소리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참고하겠습니다. 총무.. 의견 적어 주세요.”
그녀의 눈이 또.. 반짝인다.
“술 마셔요??”
아하하하하하
모두가 웃는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아, 마을 운영 어르신들이 밥은 주시겠답니다.”
“오~~~~~~~~”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우리도 가도 되나~~”
경상도 사투리.. 4학년 서파 지훈이 형이다.
“넵 물론입니다. 우리 과 라면 누구든지 환영입니다. 다만 4학년은 회비 받겠습니다.”
”야이 씨. 낼게 얼마야. “
하하하하 모두 또 웃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더 질문이나…. 의견 받겠습니다.”
“효선 언니... 괜찮아요??”
서파 2학년 민지다. 눈이 벌겋다. 쟤는… 또, 운다…
“네. 효선이.. 전효선 학우는…”
“효선이 말짱해요. 빨리 오래요”
보라다.
“더 이상 의견 없으면, 투표용지 분출 하겠습니다. 나가시면서 한 장씩 가져가시면 됩니다. 투표함은 정문 자판기 옆에 내일 13시까지 놓도록 하겠습니다. 투표 내용은.. 충주로의 엠티 찬, 반대로 나뉘어 있고, 기간에 대한 선택이 있고, 참석 o x로 되어 있습니다. 이후 다른 의견이나 질문 있으시면 개인적으로 받을 테니 연락 주세요. 그럼 학회 마치겠습니다. 학장이었습니다.”
다들 백사장 파도에 모래알 빠지듯이 대강의 실을 나간다. 재훈이 형이 엄지손을 치켜든다. 보라와 그녀, 희경이와 예리가 열심히 투표용지를 나누어 준다.
너무 피곤하다.
띠리 리리
“어 형. 왜.”
“베이비 아. ㅋ 어덜트~~”
“아 왜~~~~~!!”
“끝났어? 밥 먹자.”
“형. 나, 오늘 학회 해서 좀 피곤해. 미안.”
“조까. 보라랑 원희랑 후문으로 와. 밥 먹자.”
“보라도?? 웬일이야??”
“닥치고 와”
석조장 정리를 하고, 3학년 조각실 불을 끄려는데 원희랑 희경이가 있다.
“가자. 학장. 후문.”
“? 희경이도 가?”
“네 ^^”
희경이 웃음이… 이상하다..
후문김치찌개 집을 도착하니 제창이 형이 우릴 부른다.
“어이 농원~~ 베이, 아니 어덜~~ 트!!!”
아 저 능글….
“보라는??”
“보라 지금 출발했데요 ^^ 오빠.”
불안하다… 뭐지…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으려는 그때.
“오빠~~ ”
보라다.
그런데 그 옆에…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