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돌
그녀가 앞에 탄다.
"아휴, 그래도 언니가 나이가 많은데 넓은데 타야죠. 그리고 나 피곤해. 뒤에서 잘래."
보라의 속을 모르겠다. 하지만 알겠다. 정말 출발하자마자 잠을 자는 것 같다. 입을 벌리고... 컥컥 소리를 내며...
충주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별 대화가 없었다. 그녀도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보라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다.
"오빠, 도착 거의 했죠? 효선이한테 전화한다..."
눈을 뜬 보라가 효선이에게 전화를 한다.
생각보다 시골이다. 시골이라는 기준은 우리 셋마다 다 달랐지만, 적어도 내가 본 효선이의 농장 마을은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이었다.
"와... 이 냄새 오랜만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냄새를 흐흡 마신다. 소똥 냄새다. 뭔가 참 아이러니 하다.
마을회관이라는 곳에서 효선이를 만나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회관 안에는 청년회장이라는 분이 계셨다.
"어서들 와요. 효선이 친구들이라고??"
말이 어르신이지... 우리 엄마뻘이다.
"아, 예. 안녕하세요. 한종대학교 미술과 학생회장입니다."
"그, 뭐. 이리로 엠티를 온다고?? 대학생들이?? 여기 뭐 놀게 있다고..."
"아 삼촌. 놀러 오는 게 아니라~ 어른들 도와주러 오는 거라고~ 아, 오빠. 삼촌이야. 엄마 동생."
"아... 예. 놀러라기보다는.. 농장일도 도와 드릴 겸...."
"도와드릴 일 많잖아요 ^^ 저도 강원도 시골에서 컸어요"
그녀다. 참 성격 좋다.
"그려.. 뭐 도와주면 우리야 땡큐지... 그, 저... 근디, 여기 말고... 딴 데 도와줬으면 하는디..."
"예. 뭐, 말씀하세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림 그려 줘."
"예??"
그림? 잠시 머리가 또 혼란스러워진다.
효선이가 정리를 해 준다.
"오빠. 삼촌들이랑 이야기했는데, 농장일은 별로 도와줄 건 없데. 그런데 우리 마을도 다른 마을처럼 예쁜 벽화 같은 그림도 있고, 마을도 예쁘게 꾸몄으면 좋겠데. 미대 다니는 친구들 온다니까 삼촌들이 그림 그려 달라는 거야. 우리 과 그림 잘 그리잖아ㅎㅎ"
뭔가 크게 기대하는 효선이의 얼굴과, 또다시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한 그녀, 대박이라는 말을 연신 날리는 보라의 사이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예.. 그런 거야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로 돌아가면 저희 학과장님이랑 학생들과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려 고마우이. 그리고 저... 이건 좀... 허허허허"
"아 예. 말씀하세요."
"우리 똥도 좀 치워 줘. 허허허 아이고 이거 참... 허허허"
"오빠. 소똥 좀 치워 달래. ㅋㅋㅋㅋㅋㅋㅋ"
효선이가... 대신 전달 한다.
"그런 거라면 뭐. 저 잘해요. 삼촌."
상아야... 넌 또 언제부터 삼촌이야.....
"아이고 이뿐 학생이 뭔 똥을 치워봐 ~"
"저 강원도 시골 출신이라니까요??? 삼촌~?"
보라와 효선이가... 상아를 보고 깍깍깍 까마귀처럼 웃는다.. 난 속이 타 들어간다.
"그.. 잠은... 거 남자는 여 회관에서 자고, 여자들은 저 위에 학교에서 자면 돼야"
"오빠, 저 위에 나 나온 초등학교 있는데 거기서 잠잘 수 있거든. 무슨 수련관 센터?로 만들었는데 잘 안돼 ㅋㅋㅋ 밥도 하루 세끼 다 주시겠데. 성아 언니! 숙소 해결, 밥 해결 어때요?"
"대박....." 보라는 지금까지 대박이란 말만 되풀이한다.
"와... 효선선배 아직도 총무예요?"
또 다시 까마귀들이 깍깍깍 운다... 나도 운다.. 아... 이거 뭐야... 정신이 없네....
청년회장 삼촌은 일 보러 가시고 효선이와 나, 보라와 그녀는 벽화를 그릴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녀와 보라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종알종알 떠들며 앞서 걷는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오빠 덕분에 학교 안 나가도 학교에 있는 기분이에요... 고마워요."
"아냐... 다른 임원들 생각이지.. 내 생각 아니야. 어머니는? 좀 어떠셔?"
"많이 좋아졌어요. 친구들이 오고 싶어 한다니까, 우리 딸 학교생활 잘하는 거 같다고 엄청 좋아했어요. 저 삼촌도 뻥치지 말라고, 미대생 애들이 여 뭐 볼 게 있다고 오냐고 안 믿었어요. 엄마는 아직 병원에 있는데, 오빠랑 친구들 보러 꼭 나올 거래요."
"그래 다행이다. 그런데 마을 그림은.."
"아... 마을 어른들이 다른 마을은 막 뭐 벽화도 그리고 예쁜데, 우리도 그런 거 좀 하자고 하셔서요. 솔직히 나도 전혀 생각이 없었거든요. 집이라고만 생각을 해서인지 나도 별 생각이 없었나 봐. 삼촌 얘기 듣고 뭔가... 죄책감?? 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엠티 꼭 오게 만들고 싶었어요. ㅎㅎ 아아아 참. 그리고.. 똥... 치울 수 있어요?? ㅋㅋㅋ 안되면 얘기해요. 빼달라 할게."
"아냐. 할 수 있어. 애들 안 하면 원희랑 둘이서라도 해 볼게."
"우끼시네 ㅋㅋㅋ"
다시 밝아진 효선이를 보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보다는.. 걱정이다. 해보지 않았던 기획이다. 작년 엠티 준비도 임원으로서 준비했지만, 지금과 상황은 아주 많이 달랐다. 제훈이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학장~~~!!! 이리 와봐~!!!!!"
그녀가 소리 지르는 건 처음 듣는다. 그녀와 보라는 소 우리 앞에서 효선이와 나를 부른다. 그곳에 가니 엄청나게 큰 소가 눈을 껌뻑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학장. 이런 소 본 적 있어?? 와... 진짜 오랜만에 소 본다... 우리 동네에도 소 참 많았는데...."
그녀는 그 소를 만지고 싶었는지 손을 뻗는다. 하지만 소는 눈만 껌뻑일 뿐 아무런 반응이 없다.
"와,,, 언니 안 무서워??"
보라와 효선이는 그녀의 손을 막는다. 나는 그 소 발 밑에 있는 똥 밖에 보이질 않는다....
여학생들이 잠잘 곳인 폐교..라고 하긴엔 너무 잘 관리되어있는 효선이의 모교를 올라가 본다.
"와. 너무 이쁜데??" 보라와 그녀는 감탄을 한다.
"마을에서 무슨 수련관 같은 걸로 만든 건데 잘 안되나 봐. 누가 여길 오겠어. 관리만 한다나 봐. 언니 여기 생각보다 화장실도 잘 되어있어요."
"여기 꾸며도 예쁘겠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온다.
"올~~ 오빠, 신기하다. 아까 언니랑 얘기한 게 벽화는 서파에서 하고, 조파는 학교 꾸미기 어쩌냐 얘기했었는데. ㅋ 신기하네."
그러네. 나만 조파고 다 서파구나... 그럴싸한 시나리오다.
그리기와 꾸미기. 같은 영역이지만 기술은 확실히 다르다.
"그래. 학교 가서 이야기해 보자."
답사도 무사히 잘 끝났다. 임원들과의 회의도 끝이 났다. 우리 임원들 너무 일을 잘한다. 학부생들에게 파트장들을 통한 전달도 끝이 났다. 조교선생님과 학과장님에게도 구두 보고는 끝났다. 이제 계획서를 작성하고 파트 교수님들과 학과장님 결제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공지문을 만들었다.
- 엠티 안내-
일시 : 5월 20일~23일(20일 금요일 미술과 외 수업은 조교 선생님께 문의)
5월 20일 금요일 8시 학교 앞 출발.
장소 : 충주시 전무읍 사과마을
활동내용 : 1. 마을 벽화 그리기 (조파 1학년, 서파 2학년, 서파 3학년, 4학년 참여인원.)
2. 마을 수련관 꾸미기 (서파1학년, 조파 2학년, 조파 3학년)
특이사항 : 밥 술 무한리필.
똥 치우기 - 지각생.
모든 준비는 끝났... 끝난 줄 알았다. 학과장님의 호출을 받기 전에는...
똑똑똑.
"어 들어와"
"안녕하세요. 교수님. 부르셨다고..."
"학장이 요즘 평판이 좋아?? 애들이 많이 좋아하더라? 대학원 애들도 물어보는데? 자기들도 가면 안 되냐고.."
"아. 아닙니다.. 임원들이 잘하는 겁니다... 그리고 대학원은... 죄송합니다.. 판이 너무 켜져서....."
"그치?? 아.. 근데 학장아... 판이 커졌다.. 미안하다."
"예???? 그게 무슨..."
"그 교수진들 회의하느라 엠티 이야기 했는데, 교수들이 다 너무 좋다고 그냥 수업으로 하자네? 수업을 아예 거기서 하는 거 어떠냐고. 너무 좋다고. 그래서 내가 아니, 날짜를 바꿀 수 없다. 애들 다 주말에 간단다. 하니까 평일 수업을 그때로 옮기겠데! 그래서 본부에 물어보니까 외부활동이라 좀 불편하지만 안될 거는 없다고 서류만 잘 준비해달래. 학장 너 생각은 어때?"
'그냥 평일에 하면 안 돼요? 수업 빼고 싶은데'
전에 학회 때 나온 의견이 생각이 난다.
"저 그럼 교수님. 그럼 평일 수업이 대체되는 거죠?"
"그렇지?"
"그럼 그다음 주 평일 전공 수업은 없는 거죠?"
"좋냐?"
"아니... 뭐..."
나도 학생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우리도 갈 거야. 우리도 밥이랑 술 무한리필 해줘."
"와주시는 건 감사드리지만, 무한리필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학우들 의견 물어보고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 요고바라? 그래. 연락 줘.ㅋ"
일이... 이상하게 잘 풀린다.
모든 엠티 준비는 끝났다. 총무인 그녀도 버스 섭외를 완벽하게 끝냈다. 식비와 숙박비가 굳어서 버스 섭외는 한방에 고민 없이 해결이 되었다. 정말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고 있다. 우리가 쓰는 돈은 벽화를 위한 재료비와 버스비가 전부다. 보라 말대로 정말 대박이다.
이제 중간고사만 잘 보면 된다. 너무 바쁘지만, 할 일이 많지만 나도 성적은 신경을 써야 한다. 학장이 2.0 받으면... 정말 끔찍하다. 전공은 나름 점수를 잘 받는 편이지만, 그 외... 머리를 써야 하는 과목들이 문제이다. 특히.
미술비평.
임재순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녀에게 공부 못하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수업시간에는 녹음까지 해 가며 열심히 필기하고 책을 보고 자료 조사를 했다.
저번에 제출한 리포트 결과가 나왔다. B+.. 저 앞에서 그녀는 보라와 함께 소리를 지른다. 둘 다 A+. 궁금해 미치겠다. 내 리포트랑 뭐가 다른지...
다음 주가 미술비평 시험이다. 솔직히 걱정이 된다. 나름 책을 좋아하고 많이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미술비평 책은 너무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비판을 하여야 한다. 뭔.. 소린지...
'만들어진 신'이후로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띠링. 보라다.
-오빠. 상아언니가 같이 공부 하자네. 비평 시험공부. 언니가 도와준대.-
-상아가? 언제??-
띠링
-오늘부터. 이따 오빠 집으로 교재 들고 갈 거야. 가지전에 문자 할게-
내 방?? 에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