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선택

sf 단편소설

by hyeon


엄마, 나 지금 바빠서. 오늘은 집에 없을 것 같으니까 오지 마.



“무슨 생각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어깨를 떨었다. 놀랐잖아, 익숙한 소명이의 얼굴이 보였다.


“야, 넌 항상 그러더라. 혼자 고개 숙이고 중얼중얼. 뭐라고 하는 거야? 바쁘다고?”


“그냥 습관 같은 거지 뭐. 커피 주문했어?”


대충 둘러댔다. 소명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커피 미각 사탕은 제대로 맛을 못 낸다고 투덜대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진짜 커피를 마실까? 그녀가 덧붙였고, 나는 카페인은 몸에 안 좋다고 적당히 대답했다.


“이수야. 너는 그거 언제 볼 거야?”


그거라니? 모르는 척 되묻자 소명이는 전자 테이블을 쾅하고 내리쳤다.


“뭐긴 뭐야, 미래지! 우리 또래 중에 아직 안 본 사람 너밖에 없을 거다. 우리 벌써 스물아홉이야. 보고 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줘야 하는 거 알지? 응? 응?”


또 시작이네, 내가 알아서 할게.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소명이는 계속 툴툴거렸다. 내년이면 우리 서른인데! 지금 석 달도 안 남았는데! 그러다 기간 놓쳐서 못하면 어떡하냐? 내 몇 없는 친구 중 한 명인 그녀는 나와 다르게 말이 많고 활발하다. 그날도 소명이에겐 알아서 한다고 대충 둘러댔지만, 이제는 정말로 신청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생각이 많아졌다.


미래를 볼 수 있다. 2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게 무슨 꿈같은 일이냐고 놀라려나?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이 홀로그램인 시대. 필요한 영양소 이외의 음식은 미각 사탕으로 해결하는 시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를 본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아아- 연말이 다가옵니다. 30세 이하의 국민은 미래를 보셔야 합니다. 기회는 딱 한 번. 기회는 딱 한 번. 30세가 넘어가면 참여할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국민복지서비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부 로봇이 이어폰으로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귀에 딱지 앉겠네. 학창 시절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미래를 보는 일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 가르친다. 내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게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우리는 서른이 되기 전에 딱 한 번 미래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만 가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인다. 이번 주말 저녁엔 친구를 만날까 아니면 집에서 혼자 드라마를 볼까? 이렇게 수십만 개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이어지고, 하나의 삶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내가 고르지 않은 선택지에서 생겨나는 아주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우리는 그걸 평행 세계라 부른다. 우주 어딘가에 정말로 그런 평행 세계가 실존하는지 알 수 없으나, 선택한다는 건 인생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 하지 않았는가.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걸 당연하다 여겨왔다.


“최선의 선택-. 단 한 번의 최선의 선택-. 29세 정이수님. 서둘러주세요.”


그놈의 최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에 신경질이 나 이어폰을 빼버렸다. 정부 산하의 미래관리청은 지역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이 고민하는 선택의 결과가 나오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정확히 무슨 원리더라.


“지니야, 미래 보는 방법 설명해 줘.”


네, 이서님! 소파에 앉았더니 커다란 파란색 덩치를 한 지니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아, 캐릭터 좀 바꿀까. 저건 자주 봐도 적응이 안 돼. 인상을 찌푸리자 지니가 사진 자료를 띄우며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미래는 인생의 단 한 번, 30세 이전에만 볼 수 있습니다. 이서님이 살고 계시는 B-5246동의 가장 가까운 정부 미래관리청 위치입니다. 자신이 고민하는 선택지를 미래청에 들고 가 로봇과 상담을 진행합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최종적으로 고르고, 그에 따른 미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리도 함께 설명해 드릴까요?”


응, 대답한 뒤 소명이가 봤다고 이야기해 줬던 그녀의 미래를 떠올렸다. 그녀는 결혼을 고민하고 있었다. 소개팅을 통해 알게 된 남자와 회사 동료인 남자. 둘 다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 누구와 진지하게 교제할지 고민했었다. 결혼은 현실이지!라고 외치던 그녀는 좀 더 조건이 좋은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었고, 소개팅한 그와 결혼한 미래를 보게 되었다. 미래라는 것은 수많은 선택과 날 둘러싼 환경의 상호작용이며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인생을 전부 볼 수는 없다. 자신이 고른 중요 사건, 즉 소명이의 경우 결혼의 결과가 나타나는 장면까지만 확인할 수 있다. 이서는 그 남자와 결혼한 15년 뒤, 눈앞에 날아다니는 이혼 서류와 법정에 드나드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보았고 충격을 받았다. 내게 전화해, 이게 운명이란 거야? 하며 울던 그녀는 몇 달 있다 소꿉친구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선택지에 관한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자, 본격적인 설명을 하려는 듯 안경을 올려 쓴 지니가 입을 열었다.


“한 국가에는 거대 인공지능이 하나씩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KOR BIG BOX’가 그것입니다. 빅박스에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모두 합쳐 놓았다고 해도 무방한, 아주 큰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미래청에 찾아가면 일차적으로 신청인의 뇌를 스캔하여 기억 데이터를 추출합니다. 단기기억 속에 있는 단편적인 지식부터 장기기억으로 넘어가 있는 모든 잠재적 기억과 지식 데이터까지 뽑아냅니다. 성격, 삶의 방식, 가정 배경, 선택의 경향성 등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을 분석하는 거죠. 그리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입력하여, 비슷한 생시에 태어나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분석한 데이터까지 융합합니다. 이는 통계학에 기반하고 있으며 데이터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합니다. 분석이 끝났다면, 이차적으로 신청인이 선택한 중요 사건의 개요와 맥락을 파악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학 입시, 결혼, 창업 등 넓지 않은 범위의 선택을 고민하기 때문에 시스템화되어 있습니다. 3차적으로, 고민하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을 때, 발생하는 수억 개가 넘는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데이터를 결합합니다. 이는 앞서 분석한 신청인의 삶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가장 확률이 높은 경우의 수가 차례대로 연결되어 홀로그램 소스로 변환됩니다. 홀로그램으로 만든 영상이 완성되면, 신청인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변환된 소스를 연결한 홀로그램 영상을 보면 됩니다. 약 두 달 정도에 걸쳐 3차 과정이 진행됩니다. 미래 보기 기술은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30세 이전의 국민에게 딱 한 번만 서비스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비스의 정확도는 대략 95%입니다. 설명을 마칠까요?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고마워, 종료해 줘. 지니에게 대답한 뒤 풀썩 소파에 누웠다. 어릴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미래청이 설립되고 난 직후였다.


‘쯧쯧…. 그거이 무당이 사주 보는 거랑 뭐가 달러? 흉년이 들어도 무당은 굶어 죽진 않는다더니, 과학의 전성기라 떠들어대면서 뭔 사기 같은 짓거리여! 이서야. 꼭 미리 보지 않아도 인생은 자연스레 흘러가게 되어있어. 다, 지 운명이 있는 것이다이….’


운명. 그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내가 봐야 하는 미래는 뭘까? 난 소명이처럼 결혼이 고민되는 남자도, 해보고 싶은 창업도, 다시 가고 싶은 대학도 없다. 적지만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회사. 도전이라곤 없는 삶. 그렇게 미루다 보니 석 달 뒤엔 서른이다. 미래를 보는 거 말고, 과거를 바꿔주면 안 되나? 후회되는 건 진짜 많은데…. 만약에 내가….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을 하나씩 짚어보다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수마에 빠졌다.


“이서님! 일어나세요! 회사에 가야 합니다! 이서님! 일어나세요! 회사에 가야,”


일어나서 팔 돌리기 두 번, 박수 세 번을 치자 지니가 사라졌다. 혹시 못 일어날까 종료 조건을 까다롭게 걸어놨는데 너무 시끄럽네,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 또 그 꿈이네. 자면서 운 건지 번질 대로 번진 화장을 보며 샤워 기계로 들어갔다가 또 잠시 졸았다. 고요한 샤워 기계 부스 속. 엄마,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번쩍 눈을 떴다. 이미 기계에서 머리까지 다 말려준 상태였다. 거의 매일 꾸는 꿈. 엄마, 엄마.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지니에게 말했다.


“지니야, 회사에 월차 신청해 주고 비행카에 미래청 위치 찍어서 밑에 대기시켜줘.”


알겠습니다! 발랄한 지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빠르게 미래청에 도착하니 상담 로봇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절차대로 상담이 진행된다는 안내를 듣다가, 로봇의 말을 끊었다. 긴장을 한 탓인지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아까 꾼 꿈의 잔상을 짚어보며 물었다.


“저기, 미래를 보는 거 말고… 과거에 하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를 보는 것도 가능한가요?”


“예-? 여기는 미래청입니다-. 관리청 역사상 그런 신청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선택을 장면으로 구성해 봤자 현재가 바뀌지 않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를 보는 원리대로라면, 제가 과거에 고르지 않았던 선택의 영향을 받아 지금과는 다르게 흘러갔을 제 인생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요?”


“아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문의해 보겠습니다-.”


초조하게 상담 로봇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미 선택한 삶이라는 경우의 수는 제외하면 되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쉬운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서님. 미래청 매니저입니다. 과거 나머지 선택의 결과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이 복지서비스가 시행된 이후로 그런 신청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손쓸 수 없는 과거의 다른 선택지를 한 번 더 볼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기술적으로 가능은 합니다만, 처음 시도해 보는 예외의 경우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기 기간이 발생합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릴 수 있어요. ‘손쓸 수 없는’이라는 매니저의 말을 되뇌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가 보고 싶은 과거의 나머지 선택지, 그날의 엄마에게 다른 대답을 하는 것.


7년 전, 대학생 때 다니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비행카로 1시간 거리라 가끔 반찬을 들고 부모님께서 찾아오시곤 했는데, 그날도 특별한 것 없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이서야. 요새 자두가 맛있단다. 몇 개 샀는데 들고 갈까? 오늘 자취방에 있어?’


예매한 영화를 보러 가려던 참이었지만, 못 본 지 오래된 엄마가 보고 싶어 집에 있을 것 같다며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의 아빠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내게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4중 추돌 사고. 손쓸 시간도 없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비행카에 깔려 즉사했다. 모든 비행카는 무인으로 운영되는데, 아주 드문 확률로 조작 계산에 에러가 나면 사고가 발생한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기계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은 속수무책이다. 그마저도 옛날의 자동차 사고에 비하면 0.001%도 안 되는 사고율이라는데, 내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 앞에서 확률의 의미는 사라진다. 병원에서 온갖 기계가 동원되어 숨을 붙이려고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자취방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는 전화를 받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시체는 심하게 손상되어 마지막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나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에 좌절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다신 볼 수 없다는 슬픔에 일 년 정도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꼭 들어가고 싶었던 해외 회사가 있어 열심히 준비하던 대회도, 학점도, 쌓고 있던 스펙도 모두 내팽개쳤다. 그날 오지 말라고 할걸. 바쁘다고 할걸. 그럼 엄마는 죽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미래의 선택지를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앞으로 뭐 얼마나 더 좋은 선택을 하겠다고 미래를 봐? 7년 뒤인 지금까지도 엄마가 꿈에 나오는 날이면 매번 울었다.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린다. 엄마, 나 지금 바빠서. 오늘은 집에 없을 것 같으니까 오지 마.


일주일 정도 기다리니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기자가 인터뷰를 신청한 적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인터뷰에 응했는데, 우리나라 미래청 설립 역사 최초로 과거를 묻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자 신문에 대서특필 되어 민망했다. 소명이에게 호들갑 떠는 전화를 받았던 건 덤이다. 다행히 정부의 보호로 상담 내용의 비밀 유지가 지켜졌다.


로봇과 상담을 진행하고, 미래 보기 기술의 절차들이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두 달 뒤, 정부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미래청 영상관으로 들어섰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면, 엄마는 살아 있었겠지. 그날 이후 엄마의 모습이 궁금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그녀와 내가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뿐인 미래를 엿볼 기회를 포기했다. 홀로그램이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 기대됐다. 의자에 앉았고, 실제 같은 홀로그램들이 움직이는 영상이 시작됐다.


그날의 엄마는 좋아했던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 옷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직원봇에게 딸이 과일을 좋아한다며 자두를 샀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예매한 영화가 있다고 얘기하면서 오지 말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잠시 시무룩했지만, 곧 웃으며 자취방이 아닌 집으로 비행카를 몰았다. 그리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여기부터 다른 과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홀로그램 영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영상에선 소리가 크게 흘러나왔지만, 귀가 막혀버린 것처럼 주위가 고요했다. 방금 내 눈으로 본 걸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집으로 가던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4중 추돌 사고. 손쓸 새도 없이 비행카에 깔려 즉사했다. 그 과정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그녀가 좋아하던 옷이 붉게 물드는 걸 보며 우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그 뒤엔 내가 아는 것과 비슷했다. 영상이 멈춘 뒤에도 한참을 울었다. 불이 꺼진 영상관에서 아주 오랫동안 홀로 생각에 잠겼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평소 좋아하던, 백 년 전 죽은 작가의 시가 떠올랐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 <서시> 한강



미래청에서 나오니 소명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과거는 잘 봤냐! 무슨 과거길래 미래까지 포기한 건데? 나한테도 비밀이냐? 호들갑 떠는 밝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방금 있었던 일들이 더 실감 나지 않았다. 소명아. 엉? 나 이제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갑자기? 뭔갈 보긴 봤나 보네? 뭔데 대체! 여전히 말이 많은 그녀에게 만나면 얘기해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치켜들어 비행카 수백 대가 떠다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만 멈춰있어, 홀로 거리의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은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 조심스레 불렀다.



당신의 삶을 넘긴다. 그날의 언저리를 더듬어보다가, 다른 삶에서도 쫓을 수 없는 당신에게 내 운명을 사랑해 보겠다고 고백한다. 그 선택을 더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자책과 후회로 얼룩진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하면.



감히 함축할 수 없는 당신의 인생, 나를 만나 기뻤다고 답할 건가요.










위 글은 진주교대 제54회 두류문학상 산문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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