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차를 탄 죄

-튀지 않는 선택


“20만 루피아, 현금요?”




하얀색이 좋아 선택한 차 한 대.
하지만 자카르타에서는 그 선택이 ‘튀는 행동’이었고, 곧 경찰의 타깃이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말없이 순응해야 했던 나의 경험.
그 안에 담긴 현지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작지만 큰 배움을 돌아본다.



15년 전 자카르타의 거리 풍경은 지금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차량은 검은색.
그 속에서 나는, 하얀색을 골랐다.
큰 차를 좋아했던 나는 9인승의 커다란 흰색 차량을 샀고, 그건 생각보다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점심 약속이 있어서 시내 중심가를 지나던 중, 길가에 서 있던 경찰 내 차를 세웠다.
나는 외국인이라 늘 기사와 함께 다녔고, 그날도 기사가 운전 중이었다.

경찰은 차량 등록증과 면허증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차선 위반이네요. 벌금 내셔야겠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신호등도, 분리 차선도 없는 복잡한 시내 도로였다. 차선 위반이라기보다, 안내 표지 하나 없는 길에서 가장자리로 주행한 게 전부였다.

나는 당황했다.
그러자 경찰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Rp200.000, cash saja"
(20만 루피아, 현금으로요)

그 말이 끝나자, 운전석의 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Minta, uang-nya."

(돈 주세요)

그 말투와 표정은 익숙하고 무덤덤했다.
'이건 원래 이렇게 처리하는 거예요.'
그런 암묵적 메시지가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지갑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갑 안에는 20만 루피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억울함이 치밀었고, 속에서 뭔가가 거슬렸다.

그래서 말했다.
“현금이 10만 루피아밖에 없는데요.”
경찰은 아무 말 없이 그 10만 루피아를 받고는 손을 흔들며 차를 보내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 차는 정당한 이유도 없이 자주 멈춰 섰다. 결국,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검은 차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커다란 흰색 차량.

거리 위의 ‘타깃’이었다.
누구보다 잘 보였고, 누구보다 자주 잡혔다.

그 흰색 차는 그렇게 9년을 나와 함께했고,

나는 검은색 차로 바꾸었다.


2025년 자카르타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흰색 차량도 흔하고, 그런 차가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배웠다. 이곳에선, 괜히 눈에 띄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자카르타에도 변화는 찾아왔다.
흰색 차는 더 이상 희귀하지 않고, 사회 시스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이곳에서 ‘정의’는 종종 침묵했고, ‘상식’은 현장의 분위기나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음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조심하고, 더 조용히, 튀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했던 나날들.

‘튀지 않는 선택’이 아니라,
‘당당해도 괜찮은 사회’를 나는 지금도 바라고 있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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