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살아남기-episode 1

-생사의 문턱


"이상 없어?”




2005년,
첫째 아이 ‘금쪽이’를 임신하고 다닌 곳은 자카르타 남부에 위치한 PI 종합병원.
현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설비가 잘 갖춰진 대형 민영 종합병원으로,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도

‘믿을 만한 병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진료를 맡았던 브라만(Dr. Braman) 선생님은 한국인 환자가 많아서였는지,
"양수", "아들", "딸", "탯줄" 같은 한국어 단어를 외워두고 간단한 대화도 했었다.
예약을 해도 진료 대기 2시간은 기본, 정작 진찰은 10분이면 끝났지만, 그나마 믿고 갈 수 있는 선택지라 묵묵히 다녔다. 병원까지는 차로 왕복 2~3시간, 교통체증까지 더해지면 하루 일정은

진료 하나로 끝이었다.




나는 자연분만을 희망했고, 다행히 별다른 이상 없이 출산일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양수가 부족하다며 며칠 먼저 유도 분만을 하자고 말했다.

며칠 후, 아침 일찍 입원하고 유도제를 먹었지만, 진통은 오지 않았다. 첫 아이였기에 욕심을 부려 개인실을 선택했고, 피곤했던 남편은

저녁 9시쯤 잠이 들었다.

밤 11시 무렵, 잠이 오지 않아 병실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과 함께 멈추지 않는 출혈이 시작되었다.

놀라움 속에 복도에 있던 간호사에게 직접 걸어가 상황을 알렸고, 나는 어느 침대에 누운 채 남편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도착했고, 담당의 브라만 선생님도 곧 왔지만,

응급 수술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마취과 의사가 연락이 안 됩니다.”


그 말이 전부였다.
그 시각이 새벽 12시 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 나는 계속 춥다고 했고, 남편은 내게 이불을 몇 겹이나 덮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들은 사실. 나는 이미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마친 상태였고,
금쪽이는 새벽 1시 21분, 세상에 태어났다.

출산 후 병실에서,
나는 의식이 깼다 흐려지기를 반복하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손가락 열 개 다 있어? 발가락은? 이상 없어?”

의사는 출혈이 너무 심해 생명이 위험했다고 했고,
남편은 내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후, 아기는 신생아 황달로 2주간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나도 같은 병원의 다른 병실에서

회복하며 아기 곁을 지켰다.




그날 새벽,
생사의 문턱을 넘으며 간절하게 바랐던 건 오직 하나였다.


무사히 만나고 싶다는 마음.
작은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이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 아이는 이제
자기 삶의 중심에서 나를 떠나 살아간다.

세상은 그런 것 같다.
가장 간절했던 순간의 기억은
시간 속에서 조금씩 무뎌지고,
아이들은 우리가 기적처럼 지켜낸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삶은, 그렇게 멀어지며 또 이어진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