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이 필요해
인도네시아 르바란은 나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으로 기억된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명절은 르바란(Lebaran)이다.
라마단 금식이 끝난 후 열리는 이슬람 최대의 축제로,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민족 대이동’이 벌어진다.
이 나라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이다. 약 2억 7천만 명이 살고 있으니, 그 이동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귀성길만 2~3일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회사들도 대부분 2주 정도 휴가를 준다.
현지인들에게는 반가운 명절이겠지만,
외국인에게는 고난의 시간이다.
회사 직원은 물론, 운전기사, 도우미, 유모까지 모두 고향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가족들은 평소 하지 않던 모든 집안일과 육아까지 책임져야 한다.
<혹시 오해할까 덧붙이자면, 인건비가 저렴한 편이기도 하고, 외국인이 직접 운전할 경우 도로 위에서 위협을 받는 일이 많기 때문에 기사나 도우미 고용이 흔한 편이다. 부유해서가 아니라,
현지에서의 생존 방식 중 하나다.>
땅이 넓은 만큼, 주택도 크다.
우리 가족도 2층짜리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다. 명절엔 아래층 닦고, 위층 쓸고, 아이들 돌보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정말 진이 다 빠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기르던 아기 고양이가 이불에 실례를 했다. 나는 이불을 밟아 초벌 세탁을 한 뒤, 통돌이 세탁기에 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물 때문에 무거워진 이불을 반쯤 세탁기에 넣고 있었는데
순간,
“눈은 뜨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머릿속에선 외쳤다.
‘손을 떼야해, 떼야해…’
쿵!
어떻게든 손이 떨어졌고,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마치 통나무처럼.
다행히 머리는 부딪히지 않았지만,
꼬리뼈는 타일 바닥에 그대로 꽂혔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엔 거품 섞인 비눗물이 널려 있었다.
잠시 후, 아이의 작은 발소리가 다가왔다.
“엄마?”
엄마의 본능일까. 아이를 놀라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씩… 아주 느리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눗물 뒤집어쓴 내가 바닥에 L자 모양으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본 딸이
“엄마, 괜찮아?”
“으으응, 괜찮아... 엄마 전화기 좀 갖다 줄래...”
작은 손이 건넨 전화기로 휴일에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덜덜 떨렸고,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당장 달려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말렸다. 인도네시아어는 내가 더 잘했고, 남편의 퇴근까지 2시간 남짓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운전기사는 시골로 떠나기 전이라 집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발을 떼며 차에 올라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휠체어에 앉아 접수하는 동안,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강하다고 믿었던 나도, 사실 꽤나 놀랐던 모양이다.
진료 침상에 누웠고, 남자 의사는 여자 간호사를 시켜 내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왼쪽 정강이에 터진 상처가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감전 시 전류가 다리를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에
살 수 있었어요. 만약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전류가
머리까지 올라가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엑스레이 촬영 후 링거, 진통제, 근육 이완제 주사를 맞고 나니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꼬리뼈는 다행히 이상 없었다. 복용 약을 받고 나서
응급실로 달려온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은 2019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날 이후 세탁기를 만질 땐 항상 고무장갑을 낀다.
아직도 바닥에 앉을 때면 방석 없이는 불편하다.
전기 기사가 세탁기를 점검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섭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감전시켰던 걸까.
지금도 세탁기 근처만 가면 마음이 움츠러든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달라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웬만한 일엔 동요하지 않는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도 속으로 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게 뭐가 중한디.”
나는 그날, 확실히 변했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