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프로가 아니다

-나나 잘하자


두 부류의 ‘프로’




한국에서 나는 한 번도 ‘아줌마’였던 적이 없었다.
2002년, 결혼식 이틀 후, 인도네시아로 건너온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아줌마’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만 가면 이상하게도 잠시 해방감을 느낀다. 물론 현실은 금세 나를 다시 ‘아줌마’로 되돌려 놓지만.

결혼은 내 인생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싱글 시절의 나는 할 말은 다 하고, 하고 싶은 건 뭐든 해내는 전사형 인간이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나는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그룹이 되었다.
게임에서처럼, 한 사람이 지면 팀 점수가 내려가듯이, 나 하나의 행동이 가족 전체의 평판에 영향을 주는 구조였다.




“말 한마디로 천리 간다? 여기선 돌아서 온다”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한없이 어리버리한 새댁이었다. 남편이 먼저 와 있던 터라 내가 만나는 지인들 역시 그의 지인들이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나는 스스로를 반벙어리로 만들었다.

내가 한 말이 오해를 사는 순간, 그건 ‘내 문제’로만 끝나지 않았다. “누구 와이프가 그러더라”는 말은 좁은 교민 사회를 돌아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단지 ABC만 말했는데, 소문은 ABCDEFG까지 달려서 내게 되돌아오는 식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남편의 지인들과는 가능한 한 접점을 줄였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괜히 스스로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좁은 바닥에도 사람은 다양하다”

그동안 일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며, 교민 사회 안에도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나이 들어서도 왜 저럴까 싶은 사람도 있었고,
반면 조용히 자기 일 묵묵히 해내는 멋진 이들도 있었다. 인성이 별로인데도 일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해 끊임없이 일이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는 지인 A와 B의 다툼을 중간에서 듣게 된 적도 있다. A의 이야기를 들으면 A가 맞고, B의 이야기를 들으면 B가 맞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며, 나는 이제 알게 됐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의견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그건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아직 프로가 아니다”

교민 사회에는 ‘프로’가 있다.
싸우고 나면 정말로 서로 얼굴도 안 보는 사람들.
그리고 싸워도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
그들은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내 얼굴에는 다 쓰여 있다. “난 당신이 싫어요”라고.

모두를 포용하며, 둥글둥글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게 잘 안 된다.


가끔 생각한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이런 고민 없이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결국 세상은 어디나 다 같은 걸까.


나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그래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때론 감정이 드러나도, 그렇게 배우며 살아간다.
서툴게라도 진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나만의 생존 방식이니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