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관계, 그러나 넘을 수 없는 선

-남겨진 내 마음


정(情)과 배신

믿음이 상처가 되기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몸으로 느낀다.
처음 보는 사람도 반갑게 인사하고, 웃으며 마음을 연다. 일터에서도 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가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오랜 시간 함께 일한 기사, 도우미, 직원들과 어느 순간 '정'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그 '정'은 종종,

내게 ‘가불’을 부탁하는 말로 돌아왔다.




말없이 떠난 직원


몇 달 동안 매장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Maaf, bisa pinjam uang dulu?

Saya butuh sekali.”
(죄송하지만, 돈을 먼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꼭 필요해서요.)


몇 달밖에 안 됐지만, 일도 성실히 하고 예의도 바르던 친구였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월급을 미리 당겨줬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떠나버렸다.




4년 일한 기사의 뻔뻔한 귀환 요구

내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던 기사가 있었다.
가족의 운전기사로도 4년을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

“Maaf, saya mau pinjam dulu 5 juta ya.

Nanti potong dari gaji.”
(미안하지만, 500만 루피아 가불해주세요.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빼고요.)

나는 믿었다. 그래서 매달 50만 루피아씩 차감하는 조건으로 가불 해줬다. 그런데 몇 주 후, 그는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문자로 통보했다.

“퇴직금은 안 받아도 돼요.

제가 빌린 500만 루피아로 퉁치죠.”

본인이 정해버린 퇴직금 계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아이 유치원 친구 집에 기사로 취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은 1년 후에 벌어졌다.

“다시 같이 일하고 싶어요.”

나는 문자의 답장 대신,

조용히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




'정든' 입주 도우미의 반복된 부탁

입주 도우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시다며 급히 시골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차비가 없다며 송금을 부탁했고, 나는 몇 번이나 보내줬다.

하지만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1년에 몇 차례씩 시골에 다녀오더니, 결국 어느 날은 차비를 안 보내주면 못 돌아오겠다는 말까지 했다.

“Kalau tidak transfer ongkos,

saya tidak bisa balik.”
(차비 송금 안 해주면, 못 돌아가요.)

정이 들었기에 몇 번은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3년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자,

결국 그만두게 했다.




이제는 원칙대로만

이제 나는 일한 날짜만큼만 가불 해준다.
미리 받으려면, 며칠 일했는지를 따지고, 계약서대로 처리한다. 더 이상 “가족 같잖아요”, “믿어주세요” 같은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엔 내가 차가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은, 가끔은 ‘상식 밖’을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억울함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현명한 거리두기’였다.

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믿음의 모양이 바뀌었다.
계산된 신뢰, 규칙 안의 배려.

이방인의 생존 방식은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진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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