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않을게요
금쪽이를 만난 날부터,
지인들이 차례차례 병실을 찾았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은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얼굴이라도 보자~”
“국 끓였어, 입만 대봐~”
문은 연달아 열렸고,
나는 화장도, 머리도, 체면도 없이
‘민낯 본캐’로 낱낱이 공개됐다.
사실, 나는 화장빨, 머리빨, 옷빨로 간신히 체면 유지하는 ‘3빨 인간’인데…
그때는 도무지 그 어떤 '빨'도 없었다.
어떤 지인은 병실 문 열고는
“누구세요?”라며 농담까지 했다.
넌 안 친했는데 왜 왔니, 정말.
[전국 미역국 대축제]
그렇게 병실은 어느새
전국 미역국 시식회장이 되어갔다.
강릉 이모가 끓인 황태 미역국
남해 느낌 나는 굴 미역국
멸치 젓갈 향이 강했던 경상도 스타일
새우와 다시마가 우러난 전라도 미역국
서울식 소고기 푹 고은 진한 국물
“비밀 레시피야” 하며 주신 OO 언니표 국물
진짜 별의별 미역국이 퇴원하고도 우리 집까지.
하루 세 번, 미역국.
그것도 3개월.
처음엔 국물에 감동했고,
두 달쯤 지나자 코끝이 살짝 떨렸다.
그럼에도 다들 “응급 수술했으니 더 잘 먹어야지~”
하며 국과 마음을 함께 끓여 왔다.
[지금은 간만 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소고기 미역국을 참 좋아한다.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밥 말아
한 그릇 뚝딱.
나는?
국물의 간은 본다.
그 이상은 아직 못 간다.
언젠간 다시 먹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기억만 꺼낸다.
[그때 그 언니들에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먹지 않지만,
그 미역국이 타지에서 가장 따뜻했던 음식이라는 것.
냄비를 안고,
병실 문을 두드리며
미역국을 건넸던 언니들, 이모들, 친구들.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그 국물,
평생 잊지 않을게요.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