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금기
첫 아이를 낳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세상에 갓 데뷔한 ‘엄마’였다.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 앞에서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육아책에 적힌 대로 아기 목욕물 온도를 온도계로 27.5도에 맞췄지만, 내 손에는 그 온도가 너무 차가웠다. 결국 ‘내 감’으로 물 온도를 맞추자,
아기는 울지 않고 목욕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은 읽었지만 삶은 몰랐던, 말 그대로 초보 엄마였다.
남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일했고, 연중 유일한 휴가는 르바란 연휴 단 2주. 나는 대부분 집에만 머물렀다. 병원과 슈퍼를 오가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고, 예쁜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는 사랑스러웠지만, 그만큼 지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내가 숨 막혀 죽겠다. 어디든 떠나야겠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자카르타에서 차로 약 3시간 거리의 해변 마을, 안예르(Anyer)였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해변 앞에 콘도가 하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고 했다. 남편 없이 나와 아기, 그리고 유모. 셋이서 떠난 첫 여행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어가 능숙하진 않았지만, 전화로 예약하고 송금까지 마친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 든든한 건, 함께한 유모의 존재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모는 단순한 아기 돌보미가 아니다. 그들은 낯선 환경의 안내자이자, 흥정 전문가, 생활 밀착형 조력자였다. 모기 물린 아이에게 천연 오일을 발라줬던 것도 그녀였다.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바닷가로 나갔다.
넓고 탁 트인 해변, 반짝이는 파도, 발끝을 간지럽히는 모래.
아이도 신나게 뛰놀고, 유모도 즐거워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다’고 느꼈다.
해변에서 한참을 놀고 있는데, 조개 목걸이와 팔찌, 마사지, 이깐 아신(ikan asin)을 파는 상인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 했다.
15분에 2천 원짜리 발마사지를 받고, 조개껍데기 목걸이도 샀다. 소금에 절인 말린 생선 '이깐 아신'도.
먹는 법은 몰랐지만 걱정 없었다. 조력자 유모가 있었으니까.
그러던 중, 한 상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초록색 옷은 입지 마. 여기선 위험해.”
놀란 내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말했다.
“저 바다엔 여왕이 살아.
초록색 옷 입고 물에 들어가면 데려가.”
그땐 그냥 ‘미신인가 보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자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자바섬 남부 해안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바다의 여왕, 냐이 로로 키둘(Nyi Roro Kidul)은 초록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색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가면, 그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남해안의 바닷물은 종종 녹색을 띤다. 초록색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면 배경색과 겹쳐 구조가 어렵다는 것이, 실제 SAR(구조팀)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전설과 과학이 절묘하게 얽힌 이 금기는,
지금도 해변의 현실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다.
냐이 로로 키둘, 사람들은 그녀를 여신이라 부르지만, 그 시작은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갈루 파쿠 왕국의 공주였던 그녀는 태양처럼 빛나는 미모를 지녔고, 사람들은 그녀를 ‘데위 스렝게(Dewi Srengenge)’, ‘태양의 여신’이라 불렀다.
하지만 아들이 없어 걱정하던 왕은 새 왕비와 재혼하고, 왕비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잇게 하려 공주를 쫓아낼 음모를 꾸민다. 무당의 저주로 공주의 몸에는 종기와 악취가 생기고, 왕국은 공포에 휩싸였다.
공주는 궁 밖으로 쫓겨나 신께 기도하며 남해에 다다른다. 그리고 신비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바다에 맡기라.”
공주는 파도 속으로 들어갔고,
병은 사라졌으며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남해를 다스리는 여왕, 냐이 로로 키둘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고 숭배했다. 초록색 옷은 그녀의 색이 되었고, 그 색을 입은 자는 그녀의 신하로 여겨 바다로 끌려간다는 금기가 생겼다.
이 전설은 특히 뿔라부한 라투(Palabuhan Ratu) 지역과 밀접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그녀를 위한 사원과,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지은 호텔 사무드라(Samudra Hotel) 308호에 그녀를 위한 객실이 있기 때문이다. 초록색으로 꾸민 그 객실에는 그녀를 위한 전통 옷, 끄바야(Kebaya)가 걸려 있고, 여전히 향을 피운다.
그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우리가 모르던 이 땅의 전설과 지혜.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도네시아 해변에 갈 때는, 초록색 옷은 입지 말자. 고운 핑크색이나 구조 시 잘 보인다는 주황색, 하얀색 옷을 입자.
굳이 바다 여왕과 옷 색깔로 경쟁할 필요는 없으니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참고 및 사진 출처
Wikipedia - Nyi Roro Kidul
https://en.m.wikipedia.org/wiki/Nyai_Roro_Kid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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