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 는 없어졌다

– 인간의 영역이 아닌 이야기

“자식은, 여자친구 생기면 끝이야”

시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원래 자식은 여자친구 생기면 내 새끼 아니야. 장가가면 더해. 껄껄껄."

알고 있다.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도.
"너도 겪어봐야지"라는 웃음이라는 것도.
그래도 밉지 않으시다. 평소 잘 웃지 않으시는 점잖은 분이신데, 그렇게 통쾌하게 웃으시는 걸 보니 나름 재미있으셨나 보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한국행 비행기, 이번엔 마음이 달랐다
[한 달 전]
나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에 간다.
매년 반복된 여정이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유독 달랐다. 처음으로, 큰아들을 혼자 한국에 남겨둔 채 떠나왔던 길을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임신 5개월까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고,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움직이지 않았다. 유산 방지 주사를 내 손으로 놓으며, 간절하게 지켜낸 아이였다.

태어난 후에도 이틀에 한 번씩 침대 커버를 갈고, 물 한 방울만 옷에 튀어도 갈아입혔다.
유치원은 함께 등하교하고, 고등학교까지 대부분을 함께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주고, 더 해줬다.
하지만 단 하나, 버릇없이 키우진 않았다.




금쪽이는 지금, 베트남에 있다.
[아들 생일]


그 아들은 지금,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학생 때 한국에서 안 살아보면 언제 살아보겠니?”


나는 아들을 설득해 한국 유학길에 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만난 베트남계 캐나다인 여자친구와 함께 열흘간 베트남 여행 중이다.

도착하자마자 여자 친구 할머니를 뵙고,
이어 캐나다에서 온 그녀의 부모님도 인사드렸다고 한다.

물론 '상견례'는 아니다.
결혼도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가 보다.
우리 세대는 결혼 약속 없이는 부모님께 인사도 못 드렸는데 말이다.




여자 친구를 안 만나겠다는 엄마의 심술

아들은 내게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3년 이상 사귀면 만나보겠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한 심술이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난 시어머니처럼은 안 되겠다.”
드라마를 보면서,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도,

그냥 그런 인간이었다.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며느리가 아무리 잘해도 딸이 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더 유치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남편이 전해준 이야기 하나.
아들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은행장’이라는 말.

그 얘기를 들은 순간,
여자 친구가…
조금 덜 밉게 느껴졌다.

정말, 나도 내가 유치하고 치사하다는 걸 안다.
안다. 그런데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걸 어쩌나.
시어머니들이 혼수 많이 해온 며느리를 왜 예뻐하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엄마, 아들, 그리고 여자친구(혹은 며느리)

오래전부터 내려온 세계 공통의 숙제.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여자친구’라는
이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

내가 아무리 쿨하고 깨어있고, 세련되려 해도 이 문제 앞에선 여전히 초라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잠이나 자야겠다.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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