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땅끝섬에는 우사가 이끌고 온 검은색 깃발의 선단이 무사히 도착하였고 우사를 따라온 다른 환국사람들이 탄 여러 척의 배들이 뒤이어 도착하였다. 앞으로 많은 환국사람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섬사람들의 마음은 한가롭지 않았고, 신시로 떠나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교차되면서 섬내부 분위기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사람들은 활기차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마가는 포구로 내려와 환웅님이 타고 가실 쌍돛배를 치장하느라 분주했다. 노란색 큰 깃발을 달아서 환웅님의 위엄을 나타내었고 각양각색의 깃발과 오방색천을 조화롭게 매달아서 화려하지만 엄숙함을 잃지 않게 하였다.
환웅님을 따라서 행사에 참여하기로 예정된 다른 닷배들도 오색깃발을 달고 여러 가지 글씨와 그림을 그린 휘장을 걸어서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며칠 전부터 마가는 섬에 내려와서 환웅님을 모시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궁궐이 완성되고 제단을 비롯한 제반시설이 갖추어지자 풍백은 운사와 의논하여 나라의 큰 행사를 거행할 길일을 선택하였고 마가는 행사날에 맞춰서 환웅님을 정중히 모시고 올라오려고 섬으로 내려온 것이다.
나라의 큰 행사는 공식적으로 초대천왕이 되시는 환웅님의 즉위식이다. 새로운 국가의 출범을 천하에 공표하고 아울러 제천행사를 거행하여 하늘에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고하는 일련의 의례와 절차를 말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중대사이지만 풍백을 비롯한 삼사오가는 서로의 지혜와 중지를 모아가며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천왕님이 즉위하고 나라를 세우는 개천의 날이 밝았다. 날씨는 눈이 부시도록 맑고 깨끗했다. 청록색의 푸른 산은 더욱 푸르렀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았다.
강가에 정박한 환웅님과 일행들을 태우고 온 배들의 깃발들은 소리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환웅님을 배웅했다. 피리소리를 따라서 환웅님을 태운 가마는 천왕궁으로 향했고 백성들은 삼사와 오가를 앞세우고 질서 있게 그 뒤를 따라갔다.
행사는 궁궐 대전 앞마당에서 진행되었는데 구름을 펼친 듯이 양털로 짠 양탄자를 바닥에 깔아 놓았고 새벽안개가 흘러가듯 장막을 두르고 선녀의 옷자락처럼 휘장이 흘러내렸다. 높은 장대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서 있고 꼭대기에는 노란색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환웅천왕님은 의관 정제하고 계단 위에 마련된 황금의자에 정좌하셨다. 좌우에는 커다란 부채를 든 칠선녀들이 시립 했고 시녀들은 말총으로 만든 우산 모양의 햇빛가리개를 받쳐 들고 있었다. 긴 창으로 무장한 호위무사들은 서너 발자국 뒤에 나무기둥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아름다운 피리의 선율이 은은히 장막을 휘돌아 울려 퍼지자 풍백은 준비된 금관을 들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환웅천왕님께 바쳐 올렸다. 칠선녀들은 공손히 받아 들고 천왕님의 머리 위에 사뿐히 씌워 드렸다. 서기 어린 빛줄기가 금관에 내려앉았고 달빛 같은 밝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뒤이어 우사는 청동으로 제작된 칠지도를 천왕님께 헌상하였다. 칠지도는 한 칼자루에 일곱 개의 칼날이 나무모양처럼 붙어있는 형상인데 북두칠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하늘과 소통하는 매개체인 신목을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 사용하는 동검은 아니고 한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통치권을 상징하고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대사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증표이자 신물이었다.
칠지도를 받아 든 환웅님은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하늘을 향해 흔들었고 백성들은 크게 환호했다. 운사는 앞으로 나아가 '천왕님 만세! 배달국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고, 백성들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피리소리는 곡조를 한층 높여 하늘 높이 올라갔고 백성들은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배달국이라 명명하였고 배달의 나라를 건설한 백성들은 배달의 민족이라 불렸다. 배달은 박달의 다른 이름이고 박달은 밝은 땅이란 의미이다. 밝은 땅은 동쪽의 나라, 해 뜨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먼 옛날 이 세상에 이름은 없고 모든 땅의 절반이상이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추위를 피해 한걸음 한걸음 동쪽으로 이동하였고 해가 밝게 비추는 따뜻하고 환한 나라 환국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삼위태백 흑수발하의 땅에 태양숭배와 경천사상을 이어받아 새로운 나라 배달국을 세운 것이다
이른 새벽 환웅천왕님은 삼사오가를 거느리고 천제단에 올랐다. 신단수 나뭇가지 위에는 봉황새가 날아와 앉았고 신림 숲 속 돌너덜 비탈에는 하얀 사슴 한쌍이 노닐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 간 제물을 고인돌 위에 바쳐 올리고 초헌, 중헌, 종헌의 법도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엄숙하고 경건하게 천제를 올렸다. 환웅천왕님은 배달국의 탄생을 하늘에 고하였고 새로운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백성들의 안녕과 번성함을 염원하였다.
환웅님은 풍백 우사 운사를 처음 만나 결의를 다짐하던 밤을 회상하며 감개무량하셨고 때마침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삼사와 더불어 오가들도 천왕님을 보필하여 배달국과 배달민족의 영광을 위하여 혼신을 다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