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족의 여인들

2-09

by 임헌수



어느 날 풍백은 서쪽 강 상류에서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강변으로 내려가 확인해 보니 곰족의 아낙네들이었다. 동물가죽으로 허투루 만든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모두 다 지쳐있었고 가운데 누워있는 여인은 매우 아파 보였는데, 옥으로 만든 귀걸이와 목걸이 등의 장식품을 보아하니 신분이 높은 사람 같았다.

다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풍백은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응급처방을 하였다. 아픈 여인은 산모였는데 하혈이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풍백은 천왕님께 급하게 보고를 올렸고 천왕님은 저가와 의원을 보내 치료해 주도록 하명하였다. 천왕님의 배려로 여인은 위험한 상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곰족은 흑수상류 황토산 기슭에 모여 살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는 황토 절벽 이곳저곳에 파놓은 굴 속에서 지내다가 여름이 되면 강가로 내려와 움막에서 생활하였다. 강은 배가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수심이 깊었고 흐름이 완만하여 모래나 자갈밭이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황토절벽은 강줄기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크고 작은 토굴들이 층층이 만들어져 있었다. 큰 토굴과 작은 토굴들은 내부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높은 곳을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들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였는데 남자들은 밖으로 나가서 수렵을 하였고 여자들은 간단한 채집을 하며 거주지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 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들 중에서 경험이 많고 자식과 친족이 제일 많은 으뜸 어머니가 왕녀가 되어 전체사회를 통솔하였다.

이들은 곰족 또는 고마족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웅족이라 불리었다. 생활방식이 곰과 비슷하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지만 실제로 곰을 숭배하였다. 곰의 이빨이나 발톱으로 만든 장신구를 몸에 달고 다녔으며 곰의 형상을 흙으로 빚어 놓고 경배하였다.


이곳은 한때 남자는 한 명도 없고 여자들만 사는 여인국이란 잘못된 소문이 있었는데, 이곳을 다녀왔다는 나무꾼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옛날에 한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곰의 탈을 쓴 여인들에게 잡혀갔는데 그곳은 남자는 한 명도 없는 여인국이었다.

곰족 여인과 강제로 결혼하고 굴속에 갇혀 살게 되었는데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사내아이들은 낳자마자 강물에 떠내려 보냈고 계집아이만 키웠다. 나무꾼은 견디다 못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뗏목을 타고도망쳤는데 강물을 헤엄치며 잡으러 오던 곰녀는 그만 깊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인데 강물에 떠내려간 사내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만든 남성국이 산맥 깊숙한 곳에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만삭의 산모는 웅족의 왕녀인데 의원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출산 중 심한 출혈 때문에 숨을 거두었다. 다행히도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는데 풍백은 유모를 수소문해서 데려다가 젖을 물려주게 하였다. 그리고 풍백은 양가에게 부탁하여 고인돌을 세우고 후하게 장사를 치르게 해 주었다.

며칠 후 왕녀의 형제들과 딸들이 아기공주를 데려가려고 내려왔는데 동물가죽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을 싣고 와 풍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동안에 아기공주에게 흠뻑 빠진 풍백은 공주를 딸처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족들에게 전달했고 왕녀를 모시고 왔던 일곱 시녀들도 공주를 돌보며 이곳에 살고 싶다고 허락을 구했다.

가족들은 시녀들이 공주를 보호해 주겠다고 한 약속과 풍백의 넉넉하고 인자한 풍모에서 배어 나오는 진솔함에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발달된 사회에서 높은 교육을 받는 것이 공주에게도 웅족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허락하기로 결정했다.

풍백은 웅녀 일행들과 함께 환웅천왕님을 찾아뵙고 아기공주를 양녀로 삼기로 약속했다는 말씀을 올렸다. 천왕님은 딸이 없는 풍백의 집안에 경사가 생겼다며 축하해 주시며 아기공주와 일곱 시녀들에게 배달국의 백성이 되는 것을 윤허해 주셨다. 그리고 웅족의 여인들에게 고마운 인사의 말씀과 잘 지어진 옷 한벌씩을 선물로 하사 하시었다.

공주의 가족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주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갔고 남아 있는 일곱 시녀들은 양가에게 인도되어 배달국 백성으로 필요한 예절과 소양을 배우게 되었다.

일곱 웅녀들은 지감 조식 금촉의 삼법수행을 먼저 시행하였다. 정신세계를 단련하여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게 하고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쑥과 달래를 꾸준하게 복용하게 하였는데 쑥은 속을 따뜻하게 하여 오랫동안 차가운 곳에서 생활하여 생겨난 냉증을 치료하여 여성성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고 달래는 거친 육식음식을 섭취해서 생겨난 소화불량을 해결하여 맥을 열어 주어 혈색을 밝게 하고 생기가 되살아 나게 하려는 처방이었다.

수련이 시작된 지 삼칠일이 지나자 웅녀들의 피부는 허물을 벗은 듯이 우윳빛으로 변했고 푸석했던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러내렸다. 구부정한 허리는 반듯하게 펴졌고어깨는 내려가고 목선이 길게 살아났다. 두 눈은 총명하게 빛났고 누런 이빨은 흰색으로 변했으며 거무스레한 입술은 선홍색으로 바뀌었다.

백일이 지나자 웅녀들은 처음 왔을 때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환골탈태하였다. 가죽옷을 벗어버리고 우리 옷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은 궁궐에 살고 있는 궁녀들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신세계 또한 크게 성장하였는데 자연의 현상만을 이해하던 단계를 넘어 만물을 주관하는 하늘의 이치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양가는 백일만에 이루어진 웅족 여인들의 놀라운 변화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만물을 잉태하여 소생시키고 재탄생시키는 천부적인 흙의 소양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되었다.

양가는 환웅천왕님을 찾아뵙고 그간의 상황을 설명드린 후, 웅족 여인들을 환족 젊은이들과 짝을 맺어주면 좋겠다는 청을 올렸다. 천왕님께서도 두 부족의 결속과 화합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며 찬성하시고 오가의 자제들 중 혼기에 찬 젊은이 일곱 명을 추천해 보라고 하셨다.


일곱 쌍의 혼례는 신단수 아래에서 거행되었는데 천왕님께서 친히 주례하시었다. 그리고 모두 이곳 신시에 거주하면서 어린 공주를 잘 보살피고 두 부족이 한 겨레로 결합하는데 밑거름이 되라고 당부하였다.

이 혼례를 시효로 두 부족 간의 혼사는 계속되었고 서로 간의 왕래도 빈번해지고 양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두 부족 사람들은 점점 가까워지며 한 가족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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