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족의 젊은이들

2-10

by 임헌수



우사가 다스리는 배달국의 동쪽 땅은 곡물이 넉넉하고 식량이 부족함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탐내거나 손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어느 때부턴가 산기슭 농촌마을에 가축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늑대들의 소행으로 보여서 함정을 깊게 파서 잡아보기로 하였다.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자 사람들은 함정으로 나가 확인해 보았다. 깊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얼룩무늬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범족들이 분명했다. 범족들은 산속 깊은 곳에 살고 있는데 일정한 거처 없이 먹잇감을 찾아서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게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네 명 모두 젊은 청년들인데 형제 사이라고 했다. 날씨가 너무 춥고 먹잇감이 없어서 배가 고픈 나머지 나쁜 짓을 했다며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우사는 초췌한 모습이 안타까워 용서해 주기로 하고 먹을 것을 한 보따리씩 싸주며 돌려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마을에서 또다시 가축들이 없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범족 형제들의 소행일 것이라 짐작한 우사는 이번에는 그물을 쳐서 잡아 보기로 했다. 짐작한 바 대로 범족 형제들이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사를 마주한 형제들은 늙고 병든 부모님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한 번만 더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인정 많은 우사는 늙은 부모님이 아프다는 말에 불쌍한 마음이 들어 이번에도 먹을 것과 병든 부모님을 위한 약초까지 싸주며 돌려보냈다.


세 번째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자 우사는 더 이상 용서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천왕님께 보고하고 의논하였다. 천왕님께서는 구가를 불러 궁수 몇 명을 데리고 가서 다치지 않게 잡아오라고 말씀하셨다.

구가는 불화살을 이용해서 두렵고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생포하기로 계획하였다. 짚단으로 높은 벽을 쌓아 좁고 막다른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몰아붙여서 꼼짝 못 하게 가두어 두고 불화살을 쏘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끔 준비하였다.

예상대로 범족 형제들은 가축을 훔치려다 들키게 되자 마을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다 짚단을 쌓아 만든 미궁 속에 갇히게 되었다. 구가는 준비한 대로 궁사들에게 불화살을 쏘게 하여 내부를 불지옥으로 만들었고 범족들은 벌벌 떨면서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천왕님 앞에 대령한 범족 형제들은 붙잡힐 때 느꼈던 공포심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형형한 눈빛의 천왕님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천왕님은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호의를 저버린 젊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그리고 천왕님은 구가에게 이르기를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고 회개하고 뉘우칠 때까지 굴속에 가두어 두라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에 머리는 희고 얼굴은 붉은 꼿꼿한 노인 한 명이 황궁 앞에 무릎을 꿇고 환웅님을 뵙기를 청원하고 있었다. 노인은 잡혀있는 범족 형제들의 아비인데 천왕님을 뵙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대신 목숨을 바칠 터이니 제발 아들들을 죽이지는 말아 주십사고 애원하였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달을 때까지 어떤 벌을 내리셔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천왕님의 어진 마음은 자식에 대한 아비의 애타는 심정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범족들에게 사람됨을 교육해 보기로 결정하셨다.


양가는 범족 청년들에게 육류섭취를 금지하게 하고 쑥과 마늘을 먹게 하였다. 쑥은 육식 위주의 생활로 생겨난 거칠고 성급한 성질을 다스려주는 효능이 있고 달래는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하여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밤에는 굴 속에서 생활하게 하였고 낮에는 밖으로 나와서 수행하게 하였다. 젊은이들의 왕성한 혈기를 감안하여 호흡수련과 더불어 무도수련을 병행하게 하였다.

백일이 지나자 이들의 몸은 기름기가 쫙 빠지고 날렵한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고 조급한 성질은 큰 바위처럼 묵직하게 변하였다. 천지인과 원방각의 법도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산과 들을 아무런 구속 없이 뛰어다니던 자유분방한 이들에게 한 곳에 박혀 규칙적인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어느 날 짙은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에 범족 형제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파수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울타리도 없는 곳에서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기에 막아선 사람도 없었고 잡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청년들이 이탈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우사는 걱정반 우려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수삼일이 지난 어느 날 범족 노인이 찾아왔다. 호랑이 가죽 한 필을 메고 왔는데 도저히 천왕님을 뵈올 면목이 없다며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식들을 다치지 않게 하고 이해하고 풀어준 우사의 넓은 아량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다.

또한 앞으로는 마을에 침입하여 가축을 훔쳐가거나 주민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주민들이 사는 곳 백리 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우사도 앞으로 두 부족들이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지내자고 화답하였고 청년들은 스스로 계율을 정해서 선무도 수행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 인격수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유하였다.

두 부족은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필요한 물자를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잘 지냈다. 훗날 범족들은 우리 민족이 동쪽으로 뻗어 나갈 때 선봉이 되기도 하고 올타리가 되기도 하였는데 나중에는 불족 또는 불겨레라 불리며 우리 민족의 중요한 한 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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