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깃발의 이주선단

2-05

by 임헌수



커다란 북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포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색 깃발을 단 배들이 청, 적, 황, 백, 흑의 순서대로 차례차례 빠져나갔는데, 청색의 배들은 선발대여서 먼저 출항하였고 나머지 배들은 색깔별로 무리 지어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환웅님이 타신 배는 황색 깃발을 달고 세 번째 선단을 이끌었다. 배들 중에 크기가 가장 크고 쌍돛을 올린 두대박이 당도리선이었다. 지휘할 수 있는 널찍한 갑판이 있고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을 만들었다.


환웅님은 갑판 위에 올라서서 앞서 가는 붉은 깃발 배들과 뒤따라 오는 흰색 깃발의 배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순풍에 돛 단 듯이 모든 배들이 바람을 가득 안고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있었고 온갖 깃발들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활발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부드러운 아침햇살이 환웅님의 얼굴에 비추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구릿빛 얼굴에는 안도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검정 깃발 배들은 곡물과 양식을 실은 화물배가 대부분이라 앞선 배들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맞은 동남풍과 잔잔한 파도 덕분에 무리하지 않아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가고 있었다.


해가 중천을 지날 때 동쪽바다에 작은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섬들의 북쪽 끝에 거북섬이 있는데 그곳 바닷가 모래밭과 솔밭언덕에서 오늘 밤 하루 쉬어 갈 예정이다. 순탄한 운행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바쁘고 힘든 내일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북소리를 신호로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색깔의 배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배들은 방울 소리를 내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가며 삼삼오오 질서 있게 거북섬을 빠져나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청, 적, 황, 백, 흑의 순서대로 진행하였다. 청색 깃발의 선발대는 벌써 먼바다로 나아갔고 흑색 깃발의 배들은 여기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같이 출발하지 않았다.

두 번째 붉은색 깃발의 배에는 풍백이 승선하여 모든 운행과정을 지휘하고 있었다. 오늘 가야 할 뱃길은 하룻밤에 마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기에 풍백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어둠이 물러가고 날이 밝아지자 시야가 확보되었다. 떠나온 섬은 이미 아득히 멀어졌고 망망대해만이 앞길에 펼쳐 있었다.

저 바다 넘어 북쪽 끝에 오늘의 목적지인 검은 바위섬이 있는데 땅끝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바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북쪽바다와 남쪽바다 사이로 길게 삐져나온 땅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 바다는 이 섬을 돌아 들어갈 수도 있지만 섬사이의 좁은 바닷길을 이용하면 빠르게 두 바다 사이를 오갈 수 있다. 이 바닷길 입구에 널찍한 포구가 하나 있는데 이곳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것이다.


하늘에는 옅은 회색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순풍이 불고 있어서 배들은 바람에 실려 가듯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풍백은 계속해서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있는데 아직까지 나쁜 징조는 없지만 회색 구름이 자꾸 신경 이 쓰였다.

운사는 네 번째 흰색 깃발의 배들을 이끌고 있었는데 잔잔한 파도를 힘차게 헤치고 나가는 배들을 보면서 다소 안도하고 있었지만 어젯밤 밤하늘의 달무리가 마음에 걸렸다. 운사의 경험으론 달무리진 다음날은 비나 눈이 오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해는 보이지 않지만 이미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시각이었다. 동쪽 바다 멀리 보여야 할 작은 섬들은 보이지 않고 선발대가 보내기로 한 거울반사 신호도 흐린 날씨 탓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기를 멈추는 듯하더니 방향이 서풍으로 바뀌었다 모든 배들은 돛을 내리고 조류의 방향을 살피었다. 마침 바닷물은 섬 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흐름만 잘 탄다면 무사히 섬 근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날씨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다행히 바람이 거칠지 않아서 파도는 높지 않았다.

붉은색 깃발의 배들과 황색 깃발의 배들은 노련한 뱃사공들의 뛰어난 솜씨 덕분에 어둡기 전에 섬에 도착했고 물때를 잘 만나서 포구에 무사히 정박했다. 그러나 흰색 깃발의 배들은 섬의 먼 곳에서부터 비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아서 조류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동쪽으로 밀려 내려갔다. 더 이상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는지 하나둘씩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고 환웅님은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아침동이 트자 흰색깃발을 단 통나무 쪽배 두척이 포구로 들어왔다. 나머지 배들도 모두 더 이상 먼바다로 떠밀려 나가지 않고 동쪽 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 닻을 내리고 무사히 정박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환웅님은 청색깃발의 선발대를 작은 섬으로 급파하여 한 척의 배도 빠짐없이 본진으로 인도해 오도록 당부하셨다.

이곳 땅끝섬은 출발점인 겹구지섬보다 크기는 작으나 주민들이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고 사방이 막힘없이 열려 있어서 바닷길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환웅님은 이 섬을 중간거점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일행들은 이곳에서 당분간 머물면서 곡물과 식량을 실은 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동안 선발대들은 나라의 중심이 될 지역으로 들어가 제단을 세우고 환웅님의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촌장들도 그들의 직업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해 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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