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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의 시간이 밝아왔다. 하늘은 푸르게 높았고 바닷물은 거울처럼 맑았다. 아직 새벽공기는 차가웠으나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부드러웠다. 포구에는 출항을 앞둔 배들이 질서 정연하게 정박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북소리가 울리면 앞으로 나갈 듯이 기세가 등등했다. 활짝 펼친 돛에는 원방각 형상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고 깃대 최상단에는 삼태극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배의 앞쪽에는 삼족오 형상의 깃발이 꽂혀 있었고 뒤편에는 해와 달과 산을 표현한 기다란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모든 배들은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 다섯 가지 색깔의 깃발 중 한 가지씩 지정하여 걸어놓게 하였는데 각각의 오색 깃발은 각기의 배들이 소속된 선단을 구별 짓는 표식이었다.
북소리가 세 번 울리자 승선하려는 사람들이 지정된 색깔의 깃발 아래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웅천왕님도 임시로 바닷가 언덕에 마련된 제단으로 나아가 약식 제례를 올렸다. 첫 번째 북이 한번 울리자 하느님에게 크게 세 번 절하고 진인사대천명을 빌었고, 두 번째 북소리에 환인천제님께 세 번 절하고 출정을 고하였으며 세 번째 북소리에 용왕님께 세 번 절하며 무사항해를 빌었다.
그리고 준비된 출사표를 낭송하였다. 목소리는 우렁차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천둥소리 같았고 세가지 신물로 치장한 환웅님의 모습은 천신이 강림한 듯 온몸에 서기가 서려 있었다.
"하늘이시여 굽이 살펴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백성들은 반 만년동안 살아왔던 터전을 뒤로하고 신천지로 떠나려고 합니다. 사는 동안 한 시도 천손임을 잊은 적이 없고 한 번도 하늘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사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천손의 자부심은 드높아지고 하늘을 향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 옵니다."
"하늘이시여 굽이 살펴 주시옵소서.
새로운 땅은 거칠고 메마르고 춥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습니다. 그곳은 극복의 땅, 기회의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옵소서."
“하늘이시여 굽이 살펴 주시옵소서.
우리가 떠나도 영영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아들의 아들이 이 땅을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천손의 땅은 남북으로 이 만리가 되고 천손의 가족은 수천만 무리가 될 것입니다. 천제단을 하늘 높이 세우고 한바탕 굿판을 크게 벌일 것입니다. 모두가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함께 어울려 우리가 한 뿌리임을 만방에 알리겠습니다."
"하늘이시여 굽이 살펴 주시옵소서.
아버지 환인님의 강건하심을 걱정합니다. 남겨진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땅의 산과 들, 강과 바다 모두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풀의 향기, 바람의 냄새까지도 머릿속에 담아 갈 것입니다. 멀리 있어도 남쪽하늘을 보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멀어지지 않게 해 주소서. 언제 다시 돌아오더라도 낯설지 않게 도와주소서."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출사표 낭송을 마치자 주변의 신하들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하늘에 큰절하며 북받치는 감정을 달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