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소중한 장고가 있어요. 제가 붙여준 이름이지요. 장고는 저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답니다. 그 세월이 무려 13년이 넘어요. 장고는 저의 모든 모습을 지켜봤었죠.
남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지저분한 모습도 장고는 모두 보았답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장고는 찾았고 장고는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줬지요.
술도 못하는 제가 육아로 멘탈이 터져버려서 아이를 재워놓고 주방 구석에서 장고에게 몸을 기대어 소주 한잔 마셨던 것도 장고는 기억하죠.
요리 한번 할 때마다 싱크대가 엉망이 되었던 것도 우리 장고는 기억한다고요.
그런 장고가 이제는 버티지를 못하네요.
그 긴 세월 동안 제 손길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준 우리 장고인데
이제는 보내줘야 해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장고는 복통에 시달렸어요.
매번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네요. 우리 장고 이제는 힘이 드나 봐요.
미련하게 제가 붙잡고 있었던 거죠.
우리 장고는 스펙이 좀 약해요. 680리터가 장고의 스펙이죠.
처음 만났을 땐 작은 주방에서 함께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덩치 큰 장고들 사이에서 제일 작은 우리 장고를 데려왔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기억을 쌓아나갔죠.
장고 배가 터지도록 집어넣은 적도 있고 시원하게 목욕시켜 준 적도 있었죠.
장고와 저는 함께 한 기억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 장고인데 이렇게 보낼 때가 되었군요.
참고로 새 장고는 제 아이가 직접 골랐어요.
문짝 4개... 산뜻한 핑크와 똑똑 노크하면 반짝이는 스펙...
아래엔 뽀송뽀송한 빛깔 뽐내는 무척 청순한 장고더군요.
장고야 너를 보내는 날은 소주 한잔 마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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