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용돈, 소중한 내 스타일....
어릴 땐 엄마가 예쁘게 묶어주지 않는 게 너무 큰 불만이었다. 지금은 딸내미를 키우고 있다 보니 그 심정이 너무나 이해된다. 아침마다 바빠 죽겠는데 숱은 사자맹크로 많고 반곱슬인 내 머리를 빗겨주다 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시절의 나는 매우 용맹한 한 마리의 아기사자였으니까...........
엄마는 나의 소망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또 이해한다. 반 곱슬머리의 숱 많은 아기사자를 엘라스틴한 긴 생머리로 만들어줄 마법은 없으니까......ㅡ,,ㅡ 이해한다.... 나도 내 딸내미의 머리를 그렇게 해줄 자신이 없다. 내 아기사자는 다행히 엘라스틴한 머리스타일의 예쁨을 모르고 있는데 그 시간이 꽤 길기를...ㅋ
아이의 주문을 받고 공주님 같은 스타일을 만들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얼마나 친구의 긴 머리를 부러워했었는지... 그래서 내 아이의 긴 머리를 지켜주고 싶나 보다..
" 엄마! 나 다이애나처럼 해줘! "
" 그게 뭔데?"
" 있잖아!! 어제 본 만화에 나오는 애! 머리를 이렇게 이렇게 땋아서 동그랗게 말고 이렇게 리본 달고 해 줘! "
"............................... 그냥 묶고 가라.."
" 히힝 뭐야 나도 공주머리!!!! "
엄마는 바빴다. 어느 정도 바빴냐면 자다가 돌연사를 걱정하실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까지 하셨다고 하니... 어린 나의 투정을 다 받아줄 여력이 없으셨을 거 같다.
나는 좀 맹랑한 구석이 있는 용맹한 아기사자였기 때문에 그 정도로 좌절하진 않았다. 조금 자라서 어리숙하고 소심하고 매우 자신 없는 어른으로 자라긴 했지만 어린 나는 참 용감했다. 한마디로 맹랑했다.
" 아 진짜! 그렇다면 내가 직접 사야지 뭐. "
나는 그 시절 작고 작은 지방도시에 살고 있었다. 예쁜 액세서리 가게 따윈 없을 거란 얘기다. 반에서 제일 마른나무 작대기 같은 발목으로 발발이 마냥 돌아다녔다. 그때만 해도 리어카에 이쁜 액세서리를 가득 담은 아주머니가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아주머니를 만나려고 온 동네를 쏘다녔다.
하늘은 역시 내 편이었다. 기어코 리어카 아주머니를 발견하고는 동전주머니에서 잔뜩 꺼낸 동전으로 맘껏 쇼핑을 했다. 그 시절 내 하루 용돈이 동그란 동전 몇 개인 걸 생각하면 나는 전재산을 다 턴 거나 다름없다.
아주 고심해서 빨갛고 동글동글한 벨벳 방울을 골랐다. 그 방울이 얼마나 예쁘던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쁨이 잊히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 아싸! 이걸로 이쁘게 묶어야지!"
집으로 뛰어와서 엄마에게 방울을 내미니 엄마의 표정이 너무 웃겼다. ' 이 녀석 봐라? '하는 딱 그런 표정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양갈래로 묶어줘야 했던 우리 엄마....
난 진짜 말총머리는 지긋지긋했다고....
난 그렇게나 공주머리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나의 하나뿐인 프로짱9 딸내미는 말총머리만 해달라고 한다.
콩 심은 데 콩이 났는데 왜 이건 안 닮았을까.....ㅋㅋㅋㅋ
어쩌면 다행이기도 한데... 그 시절 너무 하고 싶었던 공단 리본으로 말총머리를 장식해 준다.
내 아이는 그것마저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 리본을 해줄 때마다 내 마음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색깔별로 같은 공단리본을 모으면서도 이걸 왜 모으고 있었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새로 나온 컬러가 보이기만 하면 결제부터 하고 보는 나였으니까....
그건 나를 위한 선물이었나 보다. 자려고 누웠을 때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그렇게나 사랑했던 나의 빨간 방울이... 그리고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친구의 리본이...
6학년 때 우연히 다른 반 아이들과 기억도 안나는 넓은 공간에서 바닥에 앉아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시간이 있었다. 사실 그게 어떤 시간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이 내게 또렷한 건 내 앞에 앉은 여자아이의
긴 머리가 너무 신기해서 그 시간 내내 쳐다보다가 용기를 내서 머리끝을 살짝 만져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반묶음 머리엔 예쁜 공단리본이 달려있었고 나는 그 뒤에서 한참 동안 그 리본을 봤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리본은 비싸보였고 너무 반짝였고 너무 부러웠다. 나의 반 곱슬머리를 꽉 묶어버린 빨간 방울로도 나의 부러움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오늘 아침에도 아이의 머리에 예쁜 공단리본을 달아줬다. 그날 입은 옷에 맞춰 선택한 리본으로...
그 리본을 볼 때마다 그렇게나 애착이 가더니 그게 이런 이유였다는 걸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우리 엄마...
하얀 양말에 하얀 스타킹에...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언제나 가장 단정하게 입혀주셨다.
그 애씀이 얼마나 고단했었는지 이제야 이해하는 딸이다.
이제는 사진만 찰칵 찍어서 대신 주문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시는 엄마....
이젠 나이 먹어서 김비서가 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