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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Feb 10. 2023

조르디와 바다

폭풍우가 치는 밤, 내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또 남은 것은 무엇인가.

폭풍우가 지난 고요한 절망의 바다에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문득, 발견되어진다.

월광이 비치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무거운 건반을 누르듯, 조르디는 노를 젓는다.

느리면서 차분하게,

기대어 미끄러지듯 조르디는 흘러간다.

악장의 마지막에 다다라, 비로소 해류가 바뀐다.

조르디는 노 젓는 것을 멈추고 불어오는 멀리 육지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바다의 고동 소리를, 떠오르는 태양의 맹렬한 뜨거움을 맞이한다.

작고 남루한 조르디의 배를 삼켜버릴 듯, 바다는 요동친다.

노를 들고 저항하지 않으면 마치 물에 잠겨 질식할 것만 같은 두려움은 마치 거대하고 난폭한 고래와 같다.

그러나 삶은 형벌이 아니다. 절망의 바다에서 조르디를 구원했던 것은 절망과 같은 이름의 희망이다.

존재의 온전함은 더함 보다 제함에 의해 만들어진다.

온전한 존재의 노동은 존재에게 제함의 고통을 주지 않는다.

연주하는 것, 그리는 것, 쓰는 것과 다르지 않게 그의 감각을 풍요롭게 해 줄 뿐이다.

그러니 조르디여, 돛을 펼치고 삶에 온전히 기대어라.

삶이 그대에게 가져다 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짜고 쓰라린 바람과 따스하고 달콤한 과일을 온전히 향유하라.

그러니 조르디여, 삶과 맞서 싸우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그대의 마음속에 있는 거대하고 흉포한 고래는 절망의 바다에 두고 오라.

그러니 조르디여, 온전하게 그대의 삶을 사랑하라.

그 또한 그대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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