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절골에 사는 외사촌형을 찾아갔다. 오토바이로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지만 자주 가질 못한다.
내 집에서 만드는 요구르트를 오토바이 뒷바구니에 싣고 방문해 인사와 건강여부를 묻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사촌형은 일찍이 상처하고 아이들 넷을 키워 모두 밖에 내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뒷산에 감나무, 대추나무, 매실, 두릅 등을 가꾸며 사는데 나이가 드니 다리도 시원치 않고 일하며 살아가기가 많이 힘든 것 같다.
올해는 다행이도 두릅농사 작황이 좋고 시세도 좋으며, 여늬해보다 20일 정도 당겨져 벌써 평년 수확량의 3분지 1 정도 수확해 팔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외사촌형은 두릅을 한 보따리 실어준다. 조금만 주고 팔아서 돈을 만들라고 해도 자꾸만 가지고 가라는 형의 고집에 늘 그렇듯이 지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나보다 두릅바구니를 더 반가워하며 저녁 밥상에 반찬으로 만들어준다.
두릅을 먹으며 옛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 여인네들은 봄이 되면 나물 뜯기에 바빴다. 냉이로 시작해서 달래와 쑥, 씀바귀 등 논두렁과 묵은 밥 그리고 양지 언덕에서 뜯은 봄나물은 밥반찬은 물론 보릿고개를 견디는 축량에 큰 몫을 차지했다. 봄나물에는 칼슘, 비타민A. 비타민C, 알리신, 아스파라긴 등 여러 영양소가 들어있어 봄이 되면 춘곤증과 무기력으로 시달리는 우리 몸에 봄기운으로 새로 태어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또한 여인네들은 새로운 맛이 나는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다.
우리 동네 봄 행사인 산나물 뜯으러 가기가 바로 이때 행해졌다. 널따란 보자기와 자루를 준비하고 열댓 살 넘은 아이들에게는 짚으로 엮어 배낭모양으로 만든 구럭을 짋어지고 따르게 한다. 점심으로는 김밥을 준비하고 물은 골짜기에서 마실 요량으로 종그락 바가지를 가지고 간다. 컴컴한 새벽에 출발해 40리길을 걸어 오서산에 다다르면 산속에서 나물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았다고 한다.
큰 산에는 나물 종류가 많다. 곰취, 바위취, 참취 등 갖가지 취나물과 원추리, 잔대, 도라지, 둥글레, 시큼한 맛이 나는 시영, 지난 가을에 익어 빨갛게 달려있는 멍가열매, 골짜기에 물 마시러 내려갔다가 잡아 모은 가재 등 정신없이 나물을 뜯어 모으다보면 산머리로부터 오후시간이 늦어감을 알리는 산그늘이 내려온다. 여인들은 깜짝 놀라 산을 내려오기 시작해 서너시간을 걸어 집에 돌아오면 깜깜한 밤중.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아이들은 엄마와 누나가 가지고 온 보물 보따리를 풀어 헤치기 시작한다. 빨갛고 예쁜 멍가열매는 따로 모으고 시영은 눈을 감고 질겅질겅 씹으며 가재들은 방바닥에 모아놓고 달리기 시합을 시킨다.
이렇게 엄마들은 먼길을 걸어 힘들긴 해도 바람도 쏘이고 식구들 반간처리를 만들고, 따라나선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즐거운 체험장이 되기도 했다.
옛 이야기 하나 생각난다.
엄마 따라 산나물 뜯으러 오서산에 간 아니는 나물 뜯기엔 광심 없이 이 골짝 저 골짝 뒤지며 신기한 구경을 하던 중 아주 예쁘게 생긴 고양이 새끼 두 마리를 만났다. 색깔도 알록달록한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가지고 놀다가 보자기에 싸가지고 엄마 따라 집에 왔다. 그날 밤 잠자던 중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울 너머에서 안마당으로 흙을 파서 끼얹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어이쿠, 네가 호랑이 새끼를 주워왔구나.”
엄마는 방문을 열고 아이가 산에서 주워온 고양이 새끼들을 내어놓았다.
“네 새끼들 예 있다. 가져가거라.”
그러고 나서 흙을 파서 끼얹는 소리가 그쳤다.
아침에 나가보니 고양이 새끼들은 보이지 않고 사립문에는 산에 두고온 구럭이 걸쳐 있었다 했다. 참 그럴 듯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지금도 여인네들은 봄나물 뜯기를 좋아한다. 승용차로 읍에서 나와 논두렁에서 씀바귀, 쑥을 뜯는 사람도 있다.
봄이 되면 새 기운을 먹고 몸과 마음에 새 기운을 받아들이고 나도 두릅나물을 먹고 더욱 활짝 봄의 기운을 펼쳐야겠다.
이렇게 하여 또 한 번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