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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Mar 16. 2022

피아노의 전설을 마주하다.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 in 롯데콘서트홀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연주에 반하게 된 건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 아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내림 나장조 작품번호 83>과 오자와 세이지의 감독으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한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마장조> 덕분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2월 25일 대구 공연을 시작으로 3월 6일 서울 공연까지 총 5차례의 만남. 가격이 만만찮았지만 ‘언제 또 짐머만을 보겠어’란 생각에 몇 장 남지 않은 3월 6일 콘서트의 표를 구매했다. 예매일부터 전설을 만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부랴부랴 도착한 롯데월드타워. 8층 콘서트홀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란 줄이 있었다. 4시 50분을 가리키는 휴대폰 시계… 시작 시각 이후에 입장이 불가하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우 엘리베이터에 타 티켓 부스와 화장실을 들른 끝에 정확히 5시에 입장했다.



롯데콘서트홀은 웅장했다. 나선형으로 이뤄진 건물 구조나 한 면의 파이프오르간이 멋졌다. 무대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짐머만의 본인 소유. 짐머만은 해외 투어 때 자신의 스타인웨이를 비행기에 싣는다. 급히 들어온 터라 숨을 헐떡이며 외투를 벗었다.


공연 관련 안내 멘트가 나오고 얼마 후 연미복을 차려 입은 백발 신사가 인사가 등장했다. 오늘의 첫번째 순서는 요한 세바스티한 바흐의 <파르티타 제1번 내림나장조, BMW 825> 연주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율이 흘렀다. 대가의 이름값이 준 무게감인지 연주 자체가 준 충격파인지 모르겠다. 둘의 중간값이 아닐까 싶다. 



1~2분 내외로 연주가 전환되었는데, 파르티타가 ‘독일식 모음곡’이기 때문이다. 짧지만 각자의 특성이 다분한 ‘모르는 곡인데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청각의 집중력을 한껏 높여 연주에 흠뻑 빠졌다. 기교 넘치는 2번 곡 ‘알라망드’와 부드럽고 서정적인 4번 곡 ‘사라반드’가 맘에 쏙 들었다. 단조에도 어둡기보단 생동감이 강했다.


놀랍도록 금방 인터미션이 찾아왔다. 50분이 요즘 말로 ‘순삭’ 된 것이다. 피아노 한 대로 시간의 속도를 맘대로 휘어잡을 수 있다니! 다만 인터미션 전 마지막 5분간 옆좌석 남자의 휴대폰 불빛에 영 집중을 못 했다. 모두 멋진 연주에 행복감을 느끼려고 왔을 테니 그 기분을 깨고 싶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주의해달라고’ 한마디 했다.



이것과 관련해서 관객들의 관람 태도가 인상 깊었다. 잡음이 큰 영향을 미치는 클래식 연주회 특성상 관중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환절기인데도 연주가 끝나는 때에 맞춰 기침하는 모습, 행여나 소음을 만들까 노심초사하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역시 공연은 퍼포머와 오디언스가 함께 꾸려나가는 것!


인터미션이 끝난 후 2부는 폴란드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9개의 프렐류드, 작품번호 1 중 1, 2, 7, 8번>으로 시작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의 수법을 수용했던 시마노프스키는 말년엔 폴란드 민족성 발현에 몰두했다고 한다. 폴란드 출신인 짐머만에게 동향의 먼 선배인 셈. 경쾌했던 바흐의 춤곡과 달리 시마노프스키의 작품엔 왠지 모를 신비감이 가득했다. 고풍스러운 부드러움이 가득한 2번 안단테 콘 모토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현재 스트리밍 사이트로 마틴 로스코라는 영국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프렐류드 1~9번>을 들으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고 있다.


프렐류드 다음엔 마주르카. <20개의 마주르카, 작품번호 50>에서 13~16번을 연주했다. 16세기부터 유행한 마주르카는 세 박자 양식의 폴란드 고유 무곡. 쇼팽의 마주르카가 유명하다. 시마노프스키의 마주르카는 밝고 통통 튄다는 느낌보다는 세련되고 고혹적이어서 여인의 맵시 있는 춤사위가 떠올랐다.



이어진 순서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3번 나단조, 작품번호 58>. 심신이 미약했을 때 작곡한 작품이지만 그 안에 강력한 에너지가 꿈틀댔다. 3악장 라르고의 몽환성과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4악장 피날레의 화려함이 맘속에 훅하고 들어왔다.


기교와 감성을 결합한 짐머만의 연주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곡이 끝날 때마다 한쪽 손을 위로 올리는 동작이 무척 멋졌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응답했다. 세 차례 이어진 커튼콜과 격정적인 앙코르 연주도 감동이었다. 다만 앙코르 곡이 끝나지 약 1~2분여 년 전 ‘파악할 수 없는 음악입니다.’라는 식의 휴대폰 전자 음성이 울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너무 아쉬운 옥에 티.



‘짐머만을 언제 또 보겠어.’ 라는 데서 시작한 공연 관람은 ‘또 그의 연주를 찾아갈 거야’로 변모했다. 살아있는 전설과 피아노 한 대가 뿜어내는 소리는 커다란 홀을 꽉 채웠고 이에 매혹된 나는 100분여를 꼼짝없이 얼어붙어 버렸다. 한동안은 스트리밍 혹은 CD로 짐머만을 만나겠지만 영접의 날을 고대하며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 후기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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