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마에서 진행한 <2022 헝가리 영화제>에세 네 편을 감상했다.
유럽 여행을 다니듯 각국의 영화를 순례하곤 한다. 프랑스나 독일, 영국처럼 뉴웨이브를 비롯한 사조가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체코, 폴란드 같은 의외의 국가에서도 다양한 수작들이 탄생했다. 이슈트반 서보(Istvan Szabo)와 벨라 타르(Bela Tarr) 정도만 알았을 뿐 체코나 폴란드에 비해 그간 헝가리 영화는 상대적으로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헝가리 영화제에 기대가 컸고 최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헝가리 출신 일디코 에넨디(Ildiko Enyedi)의 독특한 흑백 작품 <나의 20세기>의 연장 선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제에 상영된 7편 중 4편을 보았고 세 편은 1960년대 한 편은 1980년대 영화며 세 편은 흑백, 한 편은 컬러 영화였다. 안드레아 드라호터(Andrea Drahota), 언드라시 발린트(Andreas Balint ) 같은 배우들이 여러 편에서 연이어 발견되는 것도 재밌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2022 헝가리 영화제>에서 본 네 편을 간단 소개해본다.
<현재>(1964) / 이슈트반 갈(Istvan Gaal)
어느 여름날 친구들끼리 잘 놀다가 한 명이 사라지고 끝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쾌한 시간은 멈춰버리고 참담한 심정만이 가득하다. 피터 위어(Peter Weir)의 <행잉 록에서의 소풍>(1975)처럼 오싹한 기운도 느껴지지만 이내 장르영화의 색채를 싹 빼버린다. 해안을 달리는 청년들을 원거리로 포착하는 장면과 헤엄치는 몸동작과 물결의 곡선적 아름다움 등 촬영작 탁월함도 <행잉 록에서의 소풍>과의 공통분모다.
사망 사건의 조사가 아닌 죽은 친구를 어떻게 떠나보내냐에 대한 영화다. 거비의 죽음으로 외려 여자친구 뵈베와의 사이가 소원해진 게 두려운 카레츠, 거비와의 추억이 괴로운 전 여자친구(그녀는 거비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한다), 절친으로서 자책감이 심한 루여까지. 미래가 창창한 이들에게 친구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겠지만 정신적 고통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그들 몫이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감독 이슈트반 갈의 장편 데뷔작이다.
<백일몽의 시대>(1965) / 이슈트반 서보
콜롬비아 메데인의 숙소에서 비앙카라는 헝가리 여인을 만났다. 얘기가 잘 통해 함께 당일치기 여행도 다녀왔다. 영화를 좋아하는 비앙카는 남동생과 종종 한국 영화 이야기를 나눴단다. 고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가 샜지만 그녀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인물이 <백일몽의 시대>를 연출한 이슈트반 서보다.
<백일몽의 시대>는 청춘영화이자 성장영화다. 공산당 정권의 억압에 짓눌리는 청년 군상도 그려지지만, 그보단 이십 대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찾는 행로에 더 주목했다. 어떤 여자는 금세 질리고, 어떤 여자는 외모가 맘에 안 들고… 결국 이상형에 가까운 에바를 만나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위기를 맞는다. 연애에 관심 없는 나도 요즘 ‘어떻게 하면 좋은 만남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 영화와 공감대가 생겼다.
제목의 백일몽은 무슨 뜻일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친구의 죽음 같은 비극적 사건도 일어나지만 유독 영화가 주인공 얀치의 기다란 꿈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 사건들 속에서 얀치를 그리는 연출 방식은 1960년대 뉴웨이브 특유의 발랄한 생기가 웃돌고 클래시컬 뮤직과 재즈를 섞어놓은 듯한 사운드트랙도 한몫한다. 얀치처럼 꿈꾸던 누군가와 이어지지 않더라도 꿈꾸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젊음이다.
<대결>(1968) / 미클로시 얀초(Miklos Jancso)
노래와 정치 혹은 혁명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본다. ‘민중가요’라는 단어로 정치와 혁명을 모두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쉽게 떠오르는 표현이다. 1960년대 브라질 저항적 예술운동 트로피칼리아(Tropicalia)를 이끌었던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 독재에 맞서 ‘A La Huelga(파업)’이란 곡을 불렀던 스페인 출신 치코 산체스 페로시오(Chicho Sanchez Ferlosio) 등 각국의 민중가요, 민중가수가 있고 한국에는 ‘아침이슬’로 알려진 김민기와 군가풍 곡을 다수 써냈던 김호철, ‘꽃보다 아름다워’로 사랑받은 가수 안치환이 잘 알려져 있다.
헝가리 영화사의 혁명아 미클로시 얀초의 1968년 작 <대결>이 민중가수의 자화상이라거나 특정 국가의 예술운동을 묘사하는건 아니지만 혁명의 주체인 대학생들이 동력 혹은 주 무기로 삼는게 노래다. 장군이 병사들에 특정한 진영을 지시하듯 학생회장은 ‘이 노래 부르자’라며 학생들을 독려한다.
무력도 없이 그저 허공에 떠도는 소리에 어떤 위력이 있을까? 오시나 나기사(Nagisa Oshima)의 영화에서도 학생들은 집요할 정도로 노래 부르며 무언가를 공고하게 다지거나 어딘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당차게 동료를 이끌었던 학생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위축되다 이내 자리에서 물러난다. 혁명 이전의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 있어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나약함이 느껴졌다.
손에 손잡고 하나의 원을 만들어 신학교 학생들을 교화시키려는 모습은 반복되는 노래와 더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력을 휘두르는 경찰과 학생혁명단을 위에서 조종하려는 또 다른 집단이 억압적인 반면에 ‘예술적’ 정치운동을 펼치는 대학생들에게서 목적은 같아도 과정이 다를 수 있음을 엿본다.
<내 어린 날의 일기>(1982) / 마르타 메자로스(Marta Meszaros)
헝가리 출신 각본가 겸 감독 마르타 메자로스가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만든 영화다. 어린 시절 부모를 떠나보낸 율리는 십수 년 만에 헝가리로 돌아와 부모의 지인이자 공산당의 충신 마그다의 슬하에서 살게 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장 속 영화에만 빠져 사는 율리. 영화 광적 측면이 마르타의 미래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고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탈출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스크린에 시선을 빼앗긴 율리의 눈빛이 선명하다.
마그다의 친구이자 다른 사상을 지닌 야노스에게서 부성애를 느낀다. 야노스와의 시퀀스 이후에 줄곧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의 회상 혹은 아버지 꿈을 꾸는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잠시 갈등도 있지만 방황하는 율리에 버팀목이 되어준다.
율리는 마그다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당 활동으로 바쁜 마그다는 왜 그리 율리에 집착했을까? 율리에 대한 진정한 사랑보다는 인생의 여러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려는 이유가 커 보였다.
영화의 후반부 율리와 야노스의 아들 안드라지와 함께 야노스를 면회 간다. 어느덧 율리는 헝가리 생활에 정착한 걸로 보이고 질풍노도의 시기도 지나간 듯하다. 이제 율리는 더 이상 부모님 꿈을 꾸지 않을까? 자전적 영화를 찍으며 마르타 메자로스가 느꼈을 복합적인 감정을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