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 다리를 지나 마침내 뇌정원으로
우리 몸에는 우리가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곳이 있다. 대공이라는 둥근 성문을 빠져나오자 빛이 쏟아졌다.어둠 속에 있던 눈이 아파서 아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서서히 손가락 사이로 빛이 익숙해지면서, 풍경이 드러났다.위버멘쉬도 말을 잊고 서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줄기의 거대한 융기가 정원 바닥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산맥 같았다. 아니, 산맥이라기보다는 대지의 뼈 같았다. 정원을 받치고 서 있는 기둥. 아미는 고개를 한참 들어 그 끝을 올려다보았다. 목이 아플 만큼 높았다.
"여기가 숨뇌야."위버멘쉬가 조용히 말했다. "연수라고도 부르지. 뇌정원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야."
아미는 폐허의 도서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았던 가장 아래쪽에서 깊게 파인 정원을 떠올렸다. 가장 오래된 정원. 위버멘쉬가 말했다. 5억 년 전부터 자라온 곳이라고. '지금 나는 그 안에 서 있다!' 믿어지지 않지만 주위에 보여지는 모든 풍경을 둘러보며 감격이 솟는다
아미의 시선이 두 산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산맥의 아래쪽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두 줄기가 서로 교차하여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왼쪽에서 온 것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온 것이 왼쪽으로. "왜 엇갈려서 가는 거예요? 그냥 바로 가도 되잖아요."위버멘쉬가 나직하게 웃었다. "글쎄 말이야. 바로 가도 될텐데 왜 엇갈려서 가는지! 많은 뇌과학자들이 이 점이 의아해서 연구했지만 확실한 답은 아직 없어."
교차점에서 오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묵직한 떨림. 수만 갈래의 신호가 길을 바꾸며 내는 생명의 박동이었다. "만약 이 교차가 없다면, 아미의 몸은 왼쪽과 오른쪽이 따로 노는 두 마리의 생물이 억지로 붙어 있는 꼴이 됐을 거야. 왼쪽 다리가 앞으로 나갈 때 오른쪽 팔이 자연스럽게 뒤로 가면서 균형을 잡는 그 정교한 협동이 불가능해지지." 아미는 교차하는 빛의 줄기들을 바라보았다. 왼쪽의 것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의 것이 왼쪽으로. 서로 엇갈리면서 하나로 통합이 되는 것. 세층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정원이라고 위버멘쉬가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세 개의 층이 하나의 통합된 물길로 하나가 되듯, 왼쪽과 오른쪽도 이 엇갈림으로 하나가 된다.
둘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숲이 나타났다. 멀리서 보면 숲 전체가 그물인 것 같았다. 가까이 가니 그물이 아니라 나무였다. 나무의 가늘고 긴 가지와 다른 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서로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물처럼 보였다. 이 곳의 나무들은 다른 정원의 나무들과 달랐다. 진한 회색 기둥이 당당히 서 있고, 그 위로 연한 회색 가지들이 특정 방향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아래로는 하얀 뿌리들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가지도 뿌리도 다른 나무의 것과 만나는 곳마다 은빛 안개 봉투에 싸여 있다. 그 안개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빛의 알갱이들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깡충 뛰어서 건너간다. 몇발 물러서서 그 나무들의 외곽으로 전체플 보면 신부의 웨딩드레스 레이스 같다고 아미는 생각했다. 아니, 레이스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건 살아 있는 웨딩 드레스의 레이스들이다. 그 섬유소의 줄기마다 빛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을 그물구성체라고 불러." 위버멘쉬가 말했다. "이 나무들은 특정한 한 곳과 깊이 대화하는 게 아니야. 뇌간을 지나는 모든 정보를 놓치지 않고 수집하는 안테나 같은 존재지. 그래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는 거야."
다시 하얀 뿌리를 자세히 보았다. 은빛 안개 봉투에 싸인 마디가 많이 나 있었다. 여기에도 안개 속의 마디마다 틈이 있고, 여기서도 빛의 전령사들은 그 틈을 도약하듯 더 훌쩍 뛰어서 다른 나무 뿌리로 빠르게 건너 뛰었다. 한 나무에서 시작된 빛이 은빛 안개를 건너 다른 나무로 넘어가고, 그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로. 정신없이 보고 있는 동안에도 가지 끝에서 새 돌기가 솟아나 다른 가지를 향해 뻗어나가려고 떨고 있었다. 다른 쪽의 돌기도 이쪽으로 오려고 하다가 둘이 가까워지자 은빛 안개가 저절로 피어나 안개 봉투를 만들었다. 그 때다 하면서 한쪽 뿌리에서 빛 전령사가 뛰어나와 다른 나무 뿌리로 건너 뛰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것이 지금,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이 나무 하나가 떨리면 정원 전체가 깨어나." 위버멘쉬가 말했다."네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 밤에 잠이 드는 것 — 모두 이 그물의 떨림이 만드는 거야." 아미는 자신의 어깨를 조금 지나 있을 대공의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이러한 그물구성체의 떨림이 늘 있어왔음이 자신의 살아있음을 나타내 준다는 것에 자신의 온 몸이 떨리는 것 같은 울림이 온다.
위버멘쉬가 아미를 호숫가로 데려갔다. 그 호수 이름이 고림로핵이라고 한단. 호수의 물은 맑고 투명한데 호수면에서 빛이 찰랑거렸다. 호숫가에 아까 본 전령사들이 하나둘 무리를 지어 도착하고 있었다. 멀리서 달려와서 모두 지쳐 보였다. 심장에서, 폐에서, 위장에서 —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전령사는 어깨가 쳐져있고 어떤 전령사는 비틀거렸고, 어떤 전령사는 발을 끌면서, 어떤 전령사는 짜증이 극도로 났는 지 날카로운 신음같은 괴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호수는 놀랍게도 전령사들이 호숫가에 발을 담그자 마자 자신의 물결을 그들의 발 위를 덮으며 부드럽게 싸 안았다. 호수의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면서 전령사들의 날카로운 빛이 부드러워지고 그들의 어깨가 펴지고 찌푸린 표정들이 풀렸다. 아미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자신에게도 그 전령사들이 느낄 비슷한 느낌이 엄마가 떠올랐다. 시험 전날 밤,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놓고 가만히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자신의 머리에 입 맞추고 가던 엄마. 그 따끈한 우유가 식도를 차고 내려가면서 온 몸에 퍼지던 따뜻함. 그건 우유의 온도가 아니라 엄마의 따끈한 사랑의 온도였다.
아! 이 호수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 구나. "이곳을 고립로핵이라고 불러."위버멘쉬가 말했다. "몸 구석구석에서 달려온 전령사들이 가져온 소식 — 혈압의 변화, 산소의 농도, 심장의 박동 — 을 이 호수가 받아. 그리고 바로 옆의 아까 본 그 망사 같은 그물구성체에 전해주면 그 그물구성체의 나무들은 네 몸에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게 하지." 전령사들이 호수에 몸을 담그면서 소식을 내려놓자 호수면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그 파동이 호숫가의 그물구성체로 전해지자 촘촘한 나무들이 파르르 떨리며 빛을 냈다. 마치 위버멘쉬의 말을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아미는 그 섬세하게 연결된 연쇄 작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몸이 느끼는 것이 호수에 닿고, 호수의 물결이 그물을 흔들고, 그물이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이 다시 몸으로 내려간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쉬지 않고 한결같이. 아미는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들어 쉬고 내 쉬고 몇번 반복을 해 보는데 그렇다! 호수의 물결이 그 리듬에 맞춰 일렁였다. 아니, 호수가 자신의 숨에 맞추는지 자신이 호수의 일렁임의 리듬을 맞추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다.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어쩌면 이 뇌정원의 호흡이. 우주의 호흡이, 지구의 호흡이 그리고 내 몸의 호흡이 하나의 장단 속에서 커다란 오케스트라의 박자에 맞추어 연주하고 있는지도
위버멘쉬가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덩굴을 가리켰다. 미주신경이라고 했다. 몸에서 가장 긴 신경 덩굴.
그 덩굴 속 뿌리 줄기 안을 달리는 전령사들이 보였다. 그런데 이들은 아까 호숫가에 도착한 전령사들과 달랐다. 온몸이 붉었다.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열이 난 것처럼. 화가 난 것처럼.
위버멘쉬가 아미의 귀에 대고 가만히 말했다 "저 모습은 아미가 수능이 가까워왔다고 느낄 때, 기말시험 직전에, 아빠가 오늘도 안 들어오실까 걱정될 때 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아빠' 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조여왔다. 현관에 아빠 구두가 없는 저녁. 엄마의 기도 소리만 들리는 밤. 그때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고, 배가 아프고, 손이 차가워지던 것. 그것이 이 붉은 전령사들의 질주였던 것이다. "저 전령사들은 화가 난 게 아니야." 위버멘쉬가 말했다. "아미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위험을 알리는 거야. '아미가 지금 힘들어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뛴대요'라고."
아미는 온 몸이 붉게 달아오른 채 달리는 전령사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들. 시험지를 마주할 때도, 아빠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이것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런데 이 전령사들이 너무 많아지면 정원이 과열돼. 온통 붉게 타오르지." 아미는 이미 알고 있었고 많이 격은 경험이다. 시험 전날 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혔던 것. 방정식의 숫자들이 달아나고 아빠 생각이 끼어들고 배가 아팠던 것. 정원이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밤도 그랬다. 몸은 너무나 피곤하고 수능 예비고사로 공부, 공부, 하면서 며칠밤을 잠을 못 잤지만 그래도 잠을 못 잔 어제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났고 다시 엄마와 아빠의 통화소리를 들었고. "그때 이 미주신경 덩굴이 하는 일이 있어. 잘 봐! 아미! 이걸 보면 네게 도움이 될거야! " 위버멘쉬가 말을 마치자, 덩굴 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붉은 색의 열 난 전령사들이 달려오는 길바로 옆에서, 맑고 시원한 에메랄드빛 물결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뇌에서 몸으로. 그 푸른 물결이 닿는 곳마다 붉은 빛을 잠 재웠다. " 이 에머랄드 빛의 물결은 아세틸콜린이라는 평화의 전령사야. 붉은 전령사들이 질주 밖에 모르는 가속 페달이라면, 이 푸른 물결은 브레이크지. 이 푸른 물결이 퍼져나가면, 달리던 붉은 전령사들도 숨을 고르며 속도를 줄여."
"아미, 네가 이 푸른 물결을 직접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아미는 위버멘쉬를 올려다보았다. "뇌정원에서 오는 명령이 없어도 네 몸이 뇌정원에 요청하는 거야." "어떻게요?" 아미는 지극한 호기심으로 위버멘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뇌과학에서 연구된 것으로 아주 쉬워. 네 호흡을 조정해서 그 푸른 물결을 부르는 거지. 코로 4초 동안 깊이 들이마시고, 7초 동안 멈추고, 입으로 8초 동안 길게 내뱉어. 나랑 같이 해볼까?" 아미는 눈을 감았다.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하나, 둘, 셋, 넷. 정원의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숨을 멈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세면서 들어 온 공기가 폐속에 담겨 있도록 했다. 정원이 고요해지고 열난 전령사들의 얼굴이 푸른 색으로 물들며 몸도 풀리고 있는 듯 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슈우—' 소리를 내며 내뱉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미는 눈을 떴다.
나무의 반투명한 뿌리안의 빛 전령사들이 빛줄기가 푸른 빛으로 되어 있었다. 아까까지 붉었던 곳이 에메랄드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호수의 물결도, 그물구성체의 나무들도, 발밑의 신경다발도 — 모두 같은 리듬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날숨에 맞춰서. 내가 한 것이다. 아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배와 가슴을 통과하느 이 숨이, 밖의 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안의 공기를 밖으로 보내는 이 정원의 숨통이 자연과 소통함으로 내 뇌 정원을 바꾸게 했다.
위버멘쉬가 아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이 숨뇌 정원은 네가 시험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워도, 아빠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도, 세상이 허무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 단 한 번도 너를 포기한 적이 없어." '헛되고 헛되도다.' 전도서의 그 구절이 또 올랐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자신의 존재가,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이, 자신의 미래도, 인간 만사도 모두 헛된 것이어서 슬프고 눈물이 났는데. 이 정원은 자신이 헛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심장을 뛰게 하고, 숨을 쉬게 하고, 피를 돌리고 있었다. 아미가 자신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허무해질 때에도..... 배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안쪽 어딘가가 따뜻해지고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느꼈을 법한, 원초적인 생명의 온기. 아미는 한 번 더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정원 전체가 그 숨결과 함께 부드럽게 출렁임을 같이 느끼면서.
위버멘쉬가 말했다. "자, 이제 숨뇌 정원을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볼까? 저 위에는 감정의 호수가 기다리고 있어."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을 옮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숨뇌 정원이 여전히 자신의 숨결에 맞춰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