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님이 눈동자를 두드리면 (10회)

햇빛으로 켜지고 꺼지는 저 푸른 빛

by Eunyoung Kim

아침 해가 눈동자를 두드리면


새벽 두 시, 볼을 꼬집으며 버텼다. 그 순간 내 몸은 이미 몇 시간째 꺼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더 올라갔다. 그물구성체의 나무들이 여전히 울창했고, 물소리가 따라왔다. 발밑의 신경다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넓어졌다. 양옆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사이를 가로질러 놓인 넓적한 구조물이 보였다.다리 같았다."이곳이 교뇌야. 다리뇌라고도 해."


다리. 아미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었다. 무언가와 무언가를 잇는 것.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좁고 깊은 골짜기 같았던 길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옆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교뇌 위로 전령사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들, 위에서 내려오는 것들, 그리고 옆에서 새로 합류하는 것들. 숨뇌보다 훨씬 복잡했다.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위버멘쉬가 옆에서 합류하는 전령사들을 가리켰다."저기서 오는 것들이 보이지? 아미의 얼굴에서 오는 전령사들이야. 피부가 느끼는 바람, 표정을 지을 때 움직이는 근육들, 귀로 들어오는 소리 — 모두 이곳으로 바로 들어와. 교뇌가 얼굴 바로 안쪽에 있어서 직통 경로가 있는 거지."


얼굴. 아미는 무심코 자기 뺨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웠다.겨울 아침 등교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파묻던 때가 떠올랐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고, 귀가 빨갛게 얼어서 교실에 들어가도 한참은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차가움과 돌아오는 감각, 그것들이 전부 전령사가 되어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표정이라는 열매

위버멘쉬가 교뇌의 옆으로 돌출된 곳으로 아미를 이끌었다. 테라스처럼 앞으로 나와 있는 그곳에는 다양한 색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다른 정원과 확연히 달랐다. 색이 화려했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의 연결이 유난히 촘촘했다. "이곳에서 얼굴의 감각이 모이고, 그 감각이 표정이 돼."


위버멘쉬가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그 나무의 가지 끝에 작은 열매 같은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열매마다 빛깔이 달랐다. 어떤 것은 환하고, 어떤 것은 어둡고, 어떤 것은 그 사이 어딘가의 애매한 빛을 띠고 있었다.

"43개의 표정 근육과 연결된 나무들이야. 감각의 정보가 이 나무들에 닿으면, 나무들이 서로 협동해서 그에 맞는 열매를 맺어. 미소, 놀람, 슬픔, 분노. 그런데 대부분의 표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열매가 가장 많아."


아미는 가지 끝의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지난주 수학 시험을 돌려받던 날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시험지를 나눠줬다.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교실의 공기가 팽팽했다. 앞줄에서부터 하나씩 불리는 이름들.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의 얼굴. 어떤 아이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떨구었고, 어떤 아이는 점수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시험지를 뒤집어 감추었다. 보름이는 자기 점수를 보고 시험지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시험지로 부채질하면서 "아 더워" 하고 웃었는데,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인지 아미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불렸을 때 아미가 어떤 얼굴을 했는지, 아미 자신은 모른다. 다만 시험지를 받아서 돌아오는 동안 등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던 것만 기억한다.


"표정은 인간만이 가진 가장 정교한 언어야."위버멘쉬가 말했다."말 한마디 없이도 얼굴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그런데 아미, 표정은 감정에 따라 저절로 만들어 지지만 네가 의도적으로 짓는 표정이어도 네 안의 정원에도 영향을 줘. 슬픈 얼굴을 오래 짓고 있으면 감정의 호수가 정말로 어두워지고,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표정을 하면 호수에 작은 빛이 비치기도 해."


아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떠올랐다. 채령이와 도시락을 맞대고 반찬을 나눠 먹으면서 재잘거렸다. 할 얘기는 날마다 왜 그렇게 많은지. 채령이 큰 언니가 싸준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먹으면 채령이가 아미의 도시락에서 소시지를 가져가고, 서로의 반찬통을 뒤적이며 킬킬거렸다. 언젠가 채령이 결석한 날 혼자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잘 모르는 다른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점심을 했다. 채령이와 같이 하는 점심시간과는 아주 다르다. 온통 혼자이고 아무도 채령이 외에는 자기 친구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시간 자신의 표정은 어땠을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많이 외롭고 스스로가 불쌍하게 생각되어 슬펐는데. 이 정원에는 어떤 모양과 어떤 색깔의 표정의 열매가 열렸을까. 그 표정의 빛깔로 이 정원이 환해지기도 또 어두워지기도 한다는데.


푸른 빛의 정자

더 올라가자 청색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타났다. 그 한가운데에 돔 형태의 우아한 구조물이 있었다. 지붕인 돔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청색반점이야. 이곳에서 각성 물질을 만들어 뇌 전체로 보내."위버멘쉬가 말했다.


아미의 시선이 돔에서 퍼져나가는 푸른빛을 따라갔다. 빛이 가장 가까운 나무의 가지 끝에 닿자, 가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축 늘어져 있던 것이 위로 뻗어 올라갔다. 그 빛이 옆 나무로 건너가자 그 나무도 가지를 펼쳤다. 그 다음 나무로, 또 그 다음 나무로. 빛이 닿는 곳마다 나무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뿌리까지 내려가고 위로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정원 전체를 깨우는 빛이었다."이 빛이 퍼져나가면 뇌정원 전체가 집중할 준비를 해. 선생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문제의 숫자들이 눈에 잡히고, 생각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 — 전부 이 빛이 하는 일이야."


아미는 깨어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중에 몇 그루가 눈에 걸렸다. 가지를 펼치기는 했는데, 뭔가 달랐다. 빛을 받아도 가지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령사들이 오가는 은빛 안개 봉투 안의 빛이 선명하지 않았다. 흐릿했다. 다른 나무들보다 색이 바랬거나 축 처져 있었다."저 나무들은 왜 저래요?"위버멘쉬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말이 없었다."저 나무들은 오랫동안 쉬지 못한 거야."


아미는 그 나무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지가 떨리는 것이, 어딘지 자신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새벽 두 시, 세 시. 책상의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시험 문제집을 펴놓고 있지만 눈이 저절로 감기는 시간. 볼펜을 잡은 손에서 힘이 빠지고, 고개가 떨어지다 화들짝 놀라 다시 드는 것을 요즘은 거의 밤마다 반복한다. 엄마가 도움이 되라고 옆에 놓아둔 커피가 식어가고, 그래도 한 문제 더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뺨을 세게 때릴 때도 많았다.그 시간 동안 저 나무들은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억지로 각성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밤마다.


"청색반점이 쉬지 못하면 처음에는 저렇게 돼."위버멘쉬가 가지가 떨리는 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집중이 안 돼. 선생님 목소리가 귀 앞에서 흩어지고, 방금 읽은 문장이 머릿속에 남지 않아. 밤새 공부해도 다음날 기억이 안 나는 건 그 때문이야.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에 예민해지지. 친구의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하거나,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아미는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었다. 지난주 채령이가 "너 요즘 좀 이상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것. 아무것도 아닌 말인데. "그리고 이것이 계속되면." 위버멘쉬가 말을 이었다. 아미는 올려다보았다. 위버멘쉬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었다. 조금 멀리, 청색반점에서 더 어두운 구석에 있는 나무들이었다. 그 나무들은 떨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가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빛이 닿아도 일어나지 못했다.


"저 빛은 노르에피네프린이 내는 빛이야. 각성 물질을 전달해 주지. 그런데 너무 오래 서 있으면 연료가 바닥이 나기 시작해. 그러면 나무들이 저렇게 돼. 무기력해지는 거야.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좋아하던 것들이 더 이상 좋지 않고. 기쁨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줄어들어."

아미는 축 늘어진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오래 바라보았다.저 나무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저 나무들에 대한 죄책감이 일어났다. 저 나무들을 살려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위버멘쉬가 아미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아미만의 잘못이 아니야. 한국의 고3들이 겪는 괴로움을 나는 알고 있어. 그 안에서 밤과 낮의 리듬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아미는 고개를 숙였 다. 돔의 푸른빛이 발끝을 비추고 있었다."그렇지만 아미,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지 않겠어?"

알면 달라질 수 있을까. 아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일 모래도 시험은 있고, 반 아이들은 학교 오기 전에 이미 새벽 학원을 거쳐서 오고. 우리 엄마는 그러지는 않지만 다른 친구들 엄마는 이번 모의고사 성적표를 냉장고에 붙여놓는다고 한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일찍 잠든다는 것은 최대의 적이다.


위버멘쉬가 아미 옆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푸른빛이 두 사람 사이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아미, 내 이름이 위버멘쉬잖아." 아미가 올려다보았다."니체가 위버멘쉬라고 부른 것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야.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넘으려고 걸어가는 사람이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는 사람. 완벽하게 고치지 못해도 인식하고 한 걸음 내딛는 사람. 그 여정 자체가 위버멘쉬야."


도서관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 책이 떠올랐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 책. "인간은 넘어서야 할 무엇이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넘어서야 할 것이 세상인지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이 정자가 매일 아침 자신을 깨우려 하고, 매일 밤 쉬고 싶어 하는데. 그런데 자신은 매일 밤 그것을 거스르고 있었다는 것. 그 사이에 무언가 넘어서야 할 것이 있다는 감각. 그것이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위버멘쉬가 옆에 있다. 어쩌면 위버멘쉬가 있어서 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미는 일어섰다. 돔의 푸른빛은 여전히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지가 떨리는 나무들도, 축 늘어진 나무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자신이 따르든 따르지 않든, 이 정원은 매일 밤 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아미는 저 축 늘어진 불쌍한 나무들, 자신이 저렇게 만들어 놓은 나무들을 살려낼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위를 향해

위버멘쉬가 아미의 손을 이끌었다. "이 길로 곧장 가면 뇌정원의 중심으로 가게 되어. 그렇지만 저 뒤쪽에 뇌정원을 돕는 다른 커다란 숲이 또 있어. 메인 뇌정원 뒤에 숨어서 네 몸의 움직임을 지원해주는 운동전문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숲이 있어. 그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아주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소뇌의 숲이야. 아까 올 때 물소리가 들렸지? 그곳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면 소뇌의 숲이야."


아미는 교뇌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보니 테라스의 나무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만들어주는 표정이 열매가 되는 나무들과 꽃들. 자신의 표정으로 그 정원에 빛을 보낼 수도, 그림자를 지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푸른 정자 지붕의 돔을 다시 한번 보았다. 아침이 되면 깨어나고 밤이 되면 조용해지는 저 푸른 빛. 몸은 지구가 돌면서 리듬을 만들듯이 밤과 낮의 리듬을 따르고자 한다.


발밑으로 전령사들이 여전히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몸에서 뇌로, 뇌에서 몸으로. 쉬지 않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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